나의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을 이야기할 때 '평소에는 온화하나 상처를 크게 받을 경우 미련 없이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라는 말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선다니, 무언가 차갑기도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다. 보통 이처럼 관계를 미련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도어 슬램(Door slam)'이라고들 하는데, 누군들 친하던 사람에게서 갑자기 돌아서고 싶을까. 쇠사슬이 굵을수록 끊어내기가 힘들듯이, 관계를 중요시하는 나에게 친한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가 어렵고, 비난받기도 쉬운 이 '도어 슬램'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보통 상대방의 습관이나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흔히들 '선을 넘는다.'라는 말처럼 도저히 포용할 수 없는 그릇된 행동이나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내 안에는 의문이 생겨나게 된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지?', '저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끌어안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 사실 선을 넘을 정도로 유별난 사람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표본으로 삼을만한 많은 사건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보통은 이런 의문이 생기고 난 후 관계를 정리하기까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처음은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약간은 농담처럼 상대방이 내게 주는 피해가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나를 때렸다고 했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그냥 "야 이건 좀 아픈데? 팔에 멍들겠다."라는 말을 웃으면서 건넨다. 보통 이럴 때 상대방이 멋쩍은 듯 "미안"하고 사과를 한다면 더 이어갈 것이 없지만,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래~"라던가 "별로 안 아프잖아"라는 식의 대응을 한다면 이후에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한 후에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 주면서 자리를 마무리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날 그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단계로, 웃음기를 빼고 또박또박 진심을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둔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이전에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으니 상대방도 그냥 장난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진지함이 묻어 나올 수 있도록 이야기해보자고 다짐한다. 만약 이때 내가 "네가 나를 때리면 정말로 아프다. 다른 건 괜찮은데 이건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진심 어린 말을 건넸음에도 상대방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관계 정리를 위한 최종 단계로 넘어간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전보다 더 진지하다거나 짜증을 낼 것도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상대방이 똑같이 불쾌한 언행을 내게 건네더라도 그냥 웃고 만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상대방은 내가 자신의 언행에 적응했다거나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나 보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웃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볼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거나 힘들었던 직장을 그만두는 날처럼 이때의 기분은 매우 홀가분한 상태이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걸리적거리던 불쾌함은 사라지고 오직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 자리가 끝날 때는 이전과 똑같이 "오늘도 즐거웠어"라는 말로 인사를 하지만 더 이상 "또 보자"라는 말을 뒤에 붙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날은 정말로 돌아서는 날이니까.
위의 예시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혹시 관계를 되돌리는 방법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관계를 정리하는 단계가 존재하기에 회복하는 방법 또한 복잡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관계를 되돌리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그냥 미안하다는 제스처만 있으면 모든 것은 리셋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에 사람을 끝까지 믿으려 하는 성격인 데다가, 한 번 마음을 건넨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마지막 단계에 왔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건넨다면 속으로 '역시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아.'라며 관계를 이전으로 되돌린다. 물론 상대방은 이런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관계의 끝이 있기까지 그 '끝'이라는 것에 대해서 성찰을 많이 한다. '오히려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상대방은 좋은 의도로 이야기한 것인데 내가 오해한 게 아닐까?'라며 상대방의 입장과 제삼자의 입장에서 계속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관계를 끝내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후회할 것이라면 행동하지 말고, 행동할 것이라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라고. 그래서 뜨겁고 지루한 고민 뒤에 오는 끝은 무척이나 차갑다. '관계를 끝내겠다.'라는 행동에는 상대방과 나에 대한 싶은 성찰과 표현, 그리고 후회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서려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