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을 하는 것에 걸맞은 성격을 약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굳이 고민 가득해 보이는 누군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해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본인이 털어놓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고민이 있냐고 묻는 것은 괜한 오지랖일뿐더러, 상담을 하게 되더라도 은근슬쩍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언제나처럼 매일 글만 쓰던 내게 어느 날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어찌할지를 몰라 상담을 받고 싶다는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교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 사진을 찍는 것이나 음악 감상, 독서 등의 취미를 가진 그 친구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용기를 내어 다가가고 싶은 어떤 여학생이 있다고 했다. 그가 좋아하는 여학생은 주변 친구와도 잘 지내면서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인기인. 나는 서로 다른 분위기를 지닌 두 사람을 보면서 남학생이 시도하고자 하는 길이 순탄치 않음을 직감했다. 여학생의 분위기 때문인지 둘은 여러 활동들을 함께 하면서 마음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랑이 그렇듯 이성으로써의 끌림이 그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남학생은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이 분명 다른 이성을 볼 때와 다르고, 여학생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두근거림도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분명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떤 마음으로 보일까 싶어 내게 질문을 했다고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정말 사랑인지를.
나는 내심 미소가 지어졌다.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착각이나 욕심? 내가 겪어본 바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뻔한 답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겠지만 내게 물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만한 명쾌한 답을 얻기 위한 질문. 그래서 나는 그 마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단추를 채우듯 몇 가지 질문을 던져주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무엇인 것 같냐"라고. 남학생은 이 물음에 "좋아한다는 마음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답을 주었다. 나는 답변을 들은 후 다시 되물었다. "방금 말한 그 답을 자신의 마음과 비교했을 때 얼마만큼 일치하느냐"라고.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지금의 마음이 얼추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은 탓인지 그는 먹구름을 걷어낸 오후의 태양처럼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래서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사랑은 타인이 확인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음이든 확정을 짓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라고 하며 "스스로가 내린 정의에 걸맞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그건 분명 사랑이 맞다."라는 말로 질문의 답을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또 메시지함이 울렸다. 보내온 사람의 닉네임이 언뜻 보이자 이전의 마음들이 떠올라 부디 잘 되었기를 바라면서 메시지함을 열게 되었다. "저번에는 감사했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질문. 남학생은 마음을 돌이켜도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과 설렘에 대한 확신도 있으나 막상 다가가면 너무 떨려서 계획했던 것을 잘 실행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과 그 여학생의 모습을 비교하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 여학생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또 용기 내어 고백을 해도 되는 것인지를 내게 질문했다.
어찌 보면 마음이 절정에 다다른 이 순간. 나는 학생의 질문에 무엇을 답해주는 것이 좋을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이미 바늘 위에 선 것 같은 위태로운 마음일 테니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우선 질문을 했던,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외모나 기타 성격에 대한 부분을 떠나서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성적인 사람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태양과 같은 밝음을 지닌 외향적인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산다면, 달과 같은 내성적인 사람은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비추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그래서 서로의 밝음을 비교했을 때 자신의 빛이 조금은 초라해 보일지는 몰라도 당신은 이미 당신만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마음껏 당당해져도 된다."라고 말이다.
지금 고백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그 마음이 어떤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후회가 남는다."라고 운을 뗐다. "그 마음은 오직 그 순간에만 빛나는 별이며 시간이 지나면 지녔던 마음의 크기만큼 후회가 되어 돌아온다."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나는 "그 마음은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마음이자 실수이기에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안함보다 용기 낸 부끄러움이 훨씬 값진 일로 기억될 거다."라고 말해주었다. 이후에는 아무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말과 무엇을 하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믿고 나아가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줬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가?(정확한 간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달 정도로 느껴진다.) 그 학생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용기를 내서 고백을 했고 짝사랑하던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대단하다, 고생 많았다 말과 함께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을 만큼 좋은 사랑을 해나가라고 축복해주었다. 갓 시작한 연애의 풋풋함 때문인지 어떤 행동을 하면 여자 친구가 좋아할지, 자신은 무엇을 준비해야 좋을지를 내게 물었으나 나는 지금까지의 마음을 봐서는 지금 이 마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하면 좋을지는 아직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은 나보다 현장에 있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 말해주며 서로가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해 알아가라고 말해주었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게 건네는 학생의 말에 "힘내세요"라고 말하며 메시지를 끝냈다.
사실 여기서 끝났으면 해피엔딩일 텐데 안타깝게 이 이야기는 아쉬운 결말로 이어진다. 두 달 뒤 보내온 메시지 짧게 요약하면 서로를 알아가고 있던 중에 여자 친구는 여러 이성과 어울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 습관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어 솔직한 마음을 전해도 보고 자신이 너무 속 좁은 사람인 건 아닌지 고민도 해보았지만 거듭된 요청에도 여자 친구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아서 결국 헤어지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별의 각오를 비친 후 한 달 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남학생은 이별을 선언했다, 그 뒤로 여학생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붙잡으려 노력했으나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한동안 내게, 자꾸 자신을 붙잡는 여자 친구와 다시 사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어보았지만 나는 "그동안 혼자 고생한 것을 아는 나로서는 어떤 결정을 하라고 조언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이어서 "하지만 연애는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 이렇게 혼자 고민하고 노력하는 형태는 그리 올바르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러고는 "고백할 때 그러했듯, 마음이 더 끌리는 쪽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믿으라"라고 말하며 세 번째 상담을 마쳤다.
이후의 결과는 다시 사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여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종료가 되었고 남학생은 1년 뒤 대학생이 되어 자신의 취미생활을 뽐내며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본듯한 상담을 끝낸 후에 나 또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는 칭찬받을 만한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는 사실들을. 이렇게 쓰고 보니 마음이 또 후련하다. 다시 상담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 또 묻는다면 내 대답은 같은 것 같다. 무엇이든 좋으니 고민이 있다면 당신이 믿는 것. 지금 그 마음속에서 더 끌리는 한 가지를 선택하고 나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