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회 차 어린이 손님

by 그리다

어린이 도서관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보통 도서관이 닫힌 이후, 저녁이나 밤에 책을 반납하시거나 출근길에 아침 일찍 책을 반납하시는 학부모님들이 계셔서 무인 책 반납기가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납된 책을 자료실별로 분류하고, 가지고 올라가서 반납 처리한 후 다시 서가에 꽂으려면 최소 두어 시간을 소요하게 되는데, 특히 주말 아침은 책 양이 많아서 은근히 지칠 때가 많다. 이런 반납 작업이 끝나면 다들 잠깐의 휴식을 하거나 각자가 맡은 파트에 일을 했는데, 나는 소소하게 아침에 도착한 신문을 뜯어 어제자 신문과 교체해주는 일을 했다. 그리 힘이 들지도 않을뿐더러 시간도 잠깐이면 되기에 몸풀기식으로 하게 된 것이 어느덧 당연한 일과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런 소소한 일과를 보내던 어느 주말. 학교를 가지 않는 어린 학생들로 가득 찬 도서관은 평소보다 생기가 넘쳤다. 그날은 신문사의 착오였는지 신문이 11시가 되어서야 자료실에 도착을 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무던하게 새로 도착한 신문을 들고 신문 걸이가 있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신문 걸이가 있는 곳은 데스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료실의 대각선 구석. 그곳은 한쪽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던 탓에 보통은 눈이 부셔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한적한 곳을 좋아하거나 널찍한 의자에 앉아 몰래 군것질을 하려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찾아오는 위치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내게 주어진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 깊숙한 구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 허리보다 약간 낮은 높이의 신문 걸이는 정오의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신문을 교체하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서 작업을 해도 되지만 신문 걸이 속에 고정대가 양쪽 끝에 위치한 나사 두 개로 신문을 조이고 푸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신문이 아래로 후드득 떨어질 수 있어 안전하게 무릎을 꿇어 낮은 위치에서 교체를 해주었다. 총 8개의 신문 중 6번째 신문을 교체하던 순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어떤 어린이 한 명이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당시 계절은 겨울이어서 그 어린 손님은 청바지에 붉은색 패딩점퍼를 입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5살 남짓. 키는 내가 무릎을 꿇은 높이에서 서로의 눈이 평행하게 마주쳤으니 약 130cm 정도가 되었던 듯싶다. 신문을 교체하는 것은 겉보기에도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 어린 손님은 퍽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호기심이 가득 실린 그 발걸음이 나와 딱 30c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을 때 어린 손님은 내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별로 대단치 않은 일임을 알기에 의례적으로 짧게 답했다.

"방금 도착한 신문이 있어서 새 걸로 바꿔주고 있어요~"

나름 밋밋한 느낌의 답변이었기에 이제 곧 이 일에 관심을 끄고 만화책을 보러 가겠지 싶었는데, 이 어린 손님은 신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우와아~"하고 소리쳤다. 항상 어른 이용객의 심드렁함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순간 이게 무슨 반응인가 싶어 당황했지만 어린아이니까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 조금 더 그 궁금함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신문은 선생님 혼자 바꾸시는 거예요?"

"네, 다른 선생님들은 지금 바쁘셔서 저 혼자 바꿔요"

또 한 번 들려오는 감탄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추임새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신문을 교체하는 내내 어린 손님이 이것저것을 만져보고 질문하는 사이 나는 어느덧 마지막 신문을 남겨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참 좋은 경험이었다고, 어린아이의 언어는 정말 순수하다며 가슴이 훈훈해지려던 찰나. 나는 그 어린 손님이 돌아서면서 툭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휴 이것 참.. 선생님께서 정말 수고가 많으시네요."


'어?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순간 흠칫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그마한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쓰실만한 구수한 어조로 수고가 많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신문을 교체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너무나도 신기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그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붉은 패딩 사이로 나온 작은 손으로 뒷짐을 쥔 채 유유히 서가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더욱더 저 아이가 정말로 나이 지긋한 어떤 노인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참 신기했던 경험. 그 날 나는 그 경험 덕분에 하루를 웃음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물론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께도 이 신기한 이야기를 말해드렸지만 다들 "에이~ 설마요"라며 믿어주시질 않으신 것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 순간 느꼈던 어떤 깨달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편견이 깨지는 순간은 꽤나 유쾌하다는 것과 나이가 어리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배울 점이 참 많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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