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가면)의 진실

by 그리다

페르소나란 가면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온 용어로써 개인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때 보이는 개별적인 태도나 자세를 뜻한다. 하지만 흔히 '가면을 쓴다.'라는 말처럼 페르소나 역시 누군가에겐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져 진실되지 않은 자세, 거짓된 모습 등의 느낌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내 유형의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이런 페르소나를 사용하는 것에 능숙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째서 이런 페르소나를 자주, 그리고 깊이 사용하게 된 것일까?


활용 여부에 대한 사실만 놓고 보자면 페르소나는 특정한 유형의 사람만이 쓰는 기술은 아니다. 흔한 예로 부모가 아이를 훈계할 때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다가도 갑자기 학교 선생님의 전화가 오면 상냥한 목소리로 바꾸어 전화를 받게 되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때가 많은 다른 유형의 사람들과는 달리 내 유형의 사람들은 이런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컨트롤하여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의 분위기에 맞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내 유형의 사람들이 이런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조절해서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나는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약자를 돕고자 하는 이타심. 그리고 싸움을 가급적 피하려는 방어기제가 합쳐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유형의 사람들은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돕거나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끌리게 되는데, 이런 마음을 먹으면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현재 심리 상태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본능적으로 습득을 하게 된다. 이 상황에 더해 보통 사람이 위로를 받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경청하는 자세와 공감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결과를 원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의 위로를 건네는 자연스러운 페르소나가 발현이 되는 것이다. 방어기제 측면에서 페르소나의 사용을 보았을 때는 상대방과의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 상대방이 원하는 자세. 예를 들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거나 이와는 반대로 명확한 답을 제시하길 원한다고 하는 심리상태가 느껴지면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그 사람이 흡족해할 만한 적당한 페르소나를 꺼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페르소나들을 여러 상황에서 본 사람들에게 당연히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이 있다. 페르소나는 가식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하는 기만행위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봐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기 위해, 타인을 상처주기 위해 사용하는 페르소나는 분명 질타를 받아야 하는 나쁜 페르소나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혹은 상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하게 되는 페르소나는 사회적인 행동의 하나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서로의 우주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페르소나는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필수적인 스킬로써 그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에게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느낀 사람들은 궁금해할 수 있다. 과연 이 중에서 진짜 너는 누구냐고. 어떤 것이 네가 가진 진짜 얼굴이냐고. 나는 이에 대답해주고 싶다. 페르소나에서 진짜 얼굴을 찾는 것은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눈을 감은 채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면 두껍고 거칠다. 코를 만지면 길고 유연하다 느껴질 것이다. 또 상아를 만지면 날카롭고 딱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코끼리의 모습이냐고 물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코끼리가 가지는 모든 특성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페르소나도 이와 같다. 어느 것이 진짜냐고 말해본들 답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얼굴이 내가 가진 진짜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듯, 페르소나 또한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을 꺼낸 것에 불과하다.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서 꺼낸 또 하나의 진심이 바로 이 페르소나인데, 이를 거짓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당사자는 조금 난감해할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자 융은 페르소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페르소나는 병리적이거나 거짓된 것이 아닌 자아와 외부세계를 연결해주는 중재자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페르소나에 의존한다면 페르소나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따라서 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페르소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틈틈이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페르소나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에서 지나치게 멀어지고 있지는 않는지를 돌이켜보고, 페르소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평범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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