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by 그리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관심이 생긴 모든 것에 물음표를 띄우고 보는 사람. 아마 그것이 내가 가진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내 유형의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고, 열정적이며 언제나 의문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가슴속에 묻어둔 질문 또한 많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은 수없이 떠오르는 물음표의 근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떤 것에 물음을 가지는 일. 이야기를 하면서 한 주제에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는 일. '빨리빨리'를 원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시간들을 불필요하게만 여긴다. 또 이렇게 선택에 앞서 시간을 끄는 일들에 대해서 가끔은 제대로 된 기준이 없거나 생각이 느린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사람의 내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상대방이 왜 이런 주제를 던졌을까를 고민하는 것부터, 저 말의 근거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걸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논리와 주장이 있는가 등등 속으로 굉장히 많은 것을 한 번에 연산하게 된다. 왜 계속 물음을 가지는가에 대해 쉽게 한 문장으로 답을 한다면 아마도 '한 가지 일에 대한 다방면에서의 해석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모든 것에 물음을 가지며 피곤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1과 1을 더하면 2가 나온다는 결과나 강아지와 고양이의 생물학적 차이와 같은 결과상 너무나도 명확히 증명된 주제들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내가 항상 의문을 가지는 것들은 내 관심사 영역에 위치한 것들 중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 문득 흥미가 생겨서 더 알고 싶어 진 것들에 대해서만 의문을 가진다.


'왜?'라는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주제,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본다. 눈치가 빠르고 빠르게 선택하는 사람들은 '척 보면 척이지 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세상은 직감만으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판단이라는 것은 지극히 자신의 경험과 주관이 가득하기 때문에 대상을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래 생각하고 여러 방향에서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결과만을 생각한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하고, 그 형량을 최대로 높여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분명 그에 합당한 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이때 나는 그 살인자가 왜 살인을 하게 된 것일까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한다. 그의 죄를 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살인자의 가정환경은 어땠을까?', '학창 시절이나 주변 친구들의 성향은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살인을 하기까지 영향을 준 것은 이러이러한 것들 뿐일까?' 그리고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려면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을 어느 시점부터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것들을. 잡초를 죽이려면 이파리 몇 개를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하듯, 범죄를 막으려면 형량을 높이고 죄를 저지른 사람을 질타하는 것을 넘어 그 시작이 되었던 원인을 잘라내는 것이 옳은 일일 테니까 말이다.


범죄를 예시로 들어 길게 설명하긴 했지만 일상의 주제에 대해서도 '왜?'라는 질문을 가지면 장점이 되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는 의문을 가진 주제에 대해서 폭넓은 지식이 쌓인다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를 예시로 들자면 '왜?'라는 질문 하나에 감자라는 이름이 지어진 역사, 원산지, 우리나라에 전파된 시기, 조리법, 영양학적 측면에서의 비교, 재배방법 등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지식들을 타인에게 이야기할 기회는 극히 드물겠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고 더 이해했다는 즐거움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나아가 이런 행위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두근거림을 가지게 해 준다.


주변을 둘러보면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게 마냥 틀린 건 아니기에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생겨난 질문 하나를 가슴에 눌러 담는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나의 의문은 역린을 건드리는 일과 같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때때로 자신이 의문을 가지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 물음은 달의 뒷면처럼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진실의 한 부분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사실을 알고 있다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음에도 말을 아끼고 있다. 그냥 상대방이 던진 질문에 의도를 생각하며 정답에 가장 가까운, 짧고 핵심적인 단어로 답을 한다. 이게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과이기 때문에. 그래도 가끔은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 나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 그런 사람과는 서로가 가졌던 의문들을 교차하며 한자리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어도 무척이나 즐거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페르소나(가면)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