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봅니다.

by 그리다

겉모습이 밝고 에너지가 넘쳐 보이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극한의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먼저 다가가는 일이 적다. 물론 매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빈도로 따졌을 때는 다가가는 것보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일이 더 많았다. 그리고 한 번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보통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그 사람을 지켜보며 그 사람의 성향이나 습관 등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파악을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그 구간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분명 친해질 만큼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둘 사이에 놓인 알 수 없는 투병한 벽에 의해 더 가까워질 수 없는 것 같은 묘한 정체기. 그래서 인내심이 비교적 부적하거나 서로의 모든 것을 빠르게 오픈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가까워지는 행위 사이에 왜 기다림의 시간을 끼워 넣게 된 것일까? 나는 살면서 그저 자신의 인맥을 넓히기 위해 가벼이 다가오는 사람이나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많이 겪게 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살아가면서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상처 받는 일이 생기다 보니 감정이 나무껍질처럼 점점 두꺼워져 내 마음에 결과적으로 이런 투명한 벽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이다. 여하튼 이런 사실 때문에 나는 상대의 진심을 확인하는 시간 동안 상대방이 애매하게 겉돌거나, 나의 마음을 떠보려 한다거나, 소위 밀당을 하려 하면 속으로 싶은 한숨을 쉬며 저 멀리 밀어낸다. 나를 상대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이 봐왔고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또한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이 사람 또한 그저 그렇게 떠나갈 사람이라 생각하고 일찍 관심을 접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서운해 할 수는 있겠지만 고래를 잡기 위해서는 낚싯바늘이 아니라 작살을 던져야 하듯, 나 또한 낚싯바늘과 같은 애매한 감정 낭비보다는 진심의 작살을 던져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는 터라 그저 서로가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기다림의 벽을 파괴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는 몰라도 나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물어보며 인근의 카페로 나를 자주 불러냈었던 친구 'A'가 바로 그 예시다. 보통은 만날 때마다 내가 고민 상담사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이 되다 보니 내게 퍽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자취방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자신에게 있었던 슬픈 일들을 줄줄이 쏟아내는 A.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대뜸 나에게 술을 한 잔 하자며 때늦은 권유를 했다. 당시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도 소중히 여겼던 터라 이런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며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라"는 말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그 친구는 "미안한데, 이미 너희 집 앞이야."라며 옆집 사람도 들릴만큼 큰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순간 나는 당혹스러움에 빠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 앞까지 찾아온 친구를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급히 나갈 준비를 하며, 혼자 속으로 몇 번을 더 투덜거렸지만 이날의 사건 덕분에 그 친구와는 기다림의 시간을 생략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 이후 내가 느낀 진심을 곱씹어보았다.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는 나지만 내심 나는 이렇게 저돌적이고 솔직한 표현을 가지고 성큼 다가와주는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처럼 항상 진심을 본다. 어찌 보면 이 시간은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오랜 시간 옆을 지켜준다는 것이 굉장히 수고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상대방의 진심을 확인하면서도 그에 맞는 보답은 어떤 것이 좋을까를 생각한다.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면 자신이 건넨 마음보다 더 큰 마음과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사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버텨준 소수의 지인들에게는 타인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은 가장 날것의 모습으로 헌신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통해 마음속에 굳건히 세워진 확신을 붙잡고 이제는 내가 이 마음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혹시나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만나고 있는 누군가의 행동이 내가 적은 내용과 유사하다 느껴진다면 일찍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옆을 지켜주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햇빛과 양분을 먹은 나무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열매를 맺듯, 지금 상대방에게 건네는 사랑과 표현 또한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크게 자라나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황홀한 감정으로 당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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