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 나무처럼

by 그리다

나는 청소년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독립적인 것을 좋아했다. 나만의 공간이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선호했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지만 신체에 변화와 함께 찾아온 '나'에 대한 자각이 나를 독립 지향적인 사람으로 변모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적인 사람'을 상상해보면 타인을 배척하고 살아가는 독불장군의 모습이 선뜻 떠오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오히려 이런 독립적인 성향 덕분에 타인에 더 가까워졌다. 그 이유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불러온 욕구 때문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 했고,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내 생각'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 또한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타인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타인과 가까워지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마다 보는 시선이 다르고, 하나의 목적지를 설정하여도 걸고자 하는 길은 다양하다는 것을.


존재의 다름을 느끼게 되자 내 안에는 자연스럽게 '나'라는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 주관이라는 것이 강해졌다. 이는 타인과 나를 구분 지을 수 있는 나만의 확고한 다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주관에 대한 것을 내 안에서 모두 결론짓지는 않았다. 혼자만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관에 대한 모든 생각을 보편적인 시선에서 찾기 시작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엇나감이 없는 그런 기준들을 찾고 이를 나에 맞게 변화시켰다. 이렇게 세워진 주관들은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증명되고 확고해지면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이 때문일까? 확고함으로 무장된 주관은 좀처럼 타인에 의해 휘둘리는 법이 없다. 겉으로는 사람이 유해 보여서 수동적으로 살아갈 것 같지만 내가 가진 유함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일 뿐, 유약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전형적인 외유내강의 기질을 가진다.) 내면에서 쇠꼬챙이처럼 꼿꼿하게 서있는 신념으로 인해 구속받거나 강요당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향해 의견을 낼 때는 너그러운 자세로 수용하지만 그 의견이 '간섭'을 넘어 '통제'의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면 가끔 강하게 반발을 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마음이 결합하니 또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싫어하는 건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무례한 언사를 들으면 똑같이 대응하지는 않지만 항상 '나는 저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품는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려, 충동이 생겨도 속으로 감내하거나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관이 들게 외었다. 물론 내가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니 타인에게 간섭하는 행위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은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서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고집불통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니까. 그래도 나는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은 나만의 기준과 추진력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내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조용한 곳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