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한 곳이 좋다.

by 그리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했다. 친구들과 놀아도 소수와 어울리기를 즐겼고,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나는 한적한 전망대나 공원 벤치에 앉아 있기를 더 선호했다. 누군가를 싫어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북적대는 곳보다는 조용한 곳이 더 끌렸다. 시끄러움이 가득 찬 공간보다는 조용함이라는 공백으로 가득 찬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나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고 여전히 조용한 곳을 좋아하기에 왜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몇 줄 적어보고자 한다.


다들 믿기지는 않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내가 전원을 끌 수 없는 커다란 진공청소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 청소기는 오감이 닿는 주변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는데 특히 사람이 이 청소기의 영역에 들어오면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내게 주입시킨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제스처. 사소한 습관이나 좋아하는 이야기 주제 등등 내가 원하지도 않는, 한 사람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 들어오게 되면서 점점 머리는 과부하를 일으키게 된다. 사실 한 두 사람의 정보인 경우는 너끈히 감당이 가능하지만 한 공간에 대여섯 명이 넘게 되는 경우 마치 한 컴퓨터로 고사양의 게임을 여러 개 돌리는 것처럼 사고 능력이 버벅거리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조금 더 고민을 해보면 '경청'이라는 습관이 치명적인 오류의 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사람의 경우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따른 적절한 반응과 답변을 들려주는 것을 즐겨하는데 반해, 다수가 있는 자리의 경우 자연스럽게 집단이 나뉘고, 이야기 주제가 나눠짐에 따라 내가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경청의 기술이 올바르게 쓰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내면의 혼란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여지없이 내 머릿속의 진공청소기는 계속 정보를 빨아들이다 보니 결국 머릿속은 산만함으로 가득 채워져서 탈진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관련한 것 외에도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생각을 멈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항상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왔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항상 '왜?'라는 생각을 가졌고, 나아가 생각의 확장이 일어나면 고민하던 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탐구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라는 것은 내게 삼시세끼 챙겨 먹는 밥처럼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런 '나만의 일상'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 신경 써야 하는 정보들이 적은, 한적한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점점 이런 공간들에 대한 친숙함과 편안함을 가지게 되었다.


여하튼 결론을 내자면 나는 조용한 곳이 좋다. 가끔 산이나 바다에 나가 멍하니 있으면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불어오는 바람이나 파도가 생각이라는 것을 덜어가 주니까. 물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영화관이나 클래식 공연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을 무조건적으로 안 갈 수는 없다는 것은 알기에 적당한 타협을 본다. 정말로 필요할 때나 지인을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홀로 조용한 곳에서 지내는 것으로 말이다. 가끔 나처럼 홀로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를 공감대가 생겨난다. 분명 조용한 곳을 찾게 될 만큼 머릿속은 복잡하고 시끄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조용한 공간이 하나씩 필요할지도 모른다. 매일매일을 항상 시끄러움과 싸우며 살아가기 때문에 조용함을 통해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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