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처럼 터지는 감정

by 그리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우리는 핵폭탄에 쓰이는 물질들을 얼핏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돌멩이 크기로 뭉쳐서 밖에 던진다고 한들 우리가 생각하는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핵폭발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질량인 '임계질량'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핵물질이 충분한 질량을 만나게 된다면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핵반응이 반응이 일어나 엄청난 열과 빛이 발생한다. 내가 시작을 핵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와 핵폭발과 유사하게 일어나는 나의 분노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분노하는 이유와 그것을 표출하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분노의 경우는 누군가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소외시켰을 때 혹은 자신의 신념을 꺾으려 들 때 종종 크게 일어난다. 또 이런 분노에 따른 표출의 경우에도 그때그때마다 표정이나 말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도 있으며 그냥 혼자 속으로 꾹 참아내는 사람 등 제각기 다르다. 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이유는 화를 낼 때 다른 사람보다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평소의 모습과 온도차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인데 나도 이런 한순간 터트리는 유형에 가까운 분노 표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분노라는 감정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듯이 나 역시나 특정한 상황에서는 남들처럼 불편한 감정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그것이 분노로 전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편한 감정들을 그 즉시 털어내려는 성향에 더해 '내가 화가 나려는 이유가 뭐지?', '저 사람의 의도를 내가 잘못 파악한 건 아닐까?'라며 스스로 감정에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내면에 위치한 '주관'과 '이타심'이 내 안에서 균형을 이루면서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한 가지 상황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생각하게 만드는데, 이런 내면의 메커니즘 때문에 분노의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빵을 훔친 사람이 있을 때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오죽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공존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결국 분노는 사그라들고 '내가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뭐지? 굳이 화를 내지 않고도 이 주장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종결되어 나긋나긋하게 표현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분노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감정을 조금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드넓은 초원에 축구장 크기만 한 울타리가 있다. 이 울타리의 이름은 '융통성'이다. 이 울타리는 매우 넓어서 누군가가 와서 뛰어다니거나 폭죽을 터트린다거나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해도 전혀 거칠 것이 없다. 그리고 이 넓은 울타리의 구석에 서랍이 두 개 달린 작은 철제 캐비닛이 하나 있다. '신념'이라는 이름의 이 캐비닛은 누구도 열 수 없도록 굵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겉에는 '절대 건들지 마시오'라는 경고 메시지가 붙어있다. 나의 분노는 이 작은 캐비닛을 누군가가 발로 찼을 때 일어난다. 보통 상대방이 욕을 한다던지 나를 폄하하는 등의 지나친 행동을 하더라도 이런 행동은 융통성이라는 울타리 안에 속하기 때문에 딱히 짜증이 난다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신념적인 부분을 무례하게 비판하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수정을 강요하려 하면 여기서 내 분노의 '임계 질량'이 쌓이게 되어 핵폭탄처럼 폭발하게 된다. 이는 다른 행동의 경우 사회적으로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기에 '그래 네 생각도 옳아'라며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내가 가진 신념은 오랜 시간의 경험과 결과들을 통해 확신으로 굳혀진 것이기 때문에 결코 타협의 여지를 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 상태에 돌입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사실 나조차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전 단계까지는 몇 번 도달해본 적은 있으나 실제로 화를 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렴풋이 예측을 해본다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엄청난 전쟁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 그 이유는 내가 가장 자신 있다 여기는 능력인 '통찰력'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뻔하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나는 사람을 볼 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들을 캐치해내고, 때로는 본인도 모르는 부분의 습관들과 같은 깊은 부분까지 읽어내는 편이다. 그래서 이 정보들을 이용하여 단점을 숨겨주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 스스로가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끔 유도하고 칭찬한다. 긍정적인 부분에서 이렇게 쓸모가 있는 통찰력을 나쁜 쪽으로 쓴다면 아마도 딱 이것과 반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핵물질이 연쇄 폭발을 일으켜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내듯 그동안 파악해놓은 정보들이 분노라는 감정에 의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상대방의 단점과 아킬레스건들을 모조리 쏟아내 버리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나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 보니 주변에서 자주 웃고, 타인을 배려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먼저 간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아픔이 많을 텐데도 저렇게 웃음으로 삼켜내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저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고. 분명 저 사람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순간 응어리진 감정들이 커다랗게 터져 나올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 순간만큼은 오지 않게 해 주자고. 요즘은 웃으며 사는 사람들을 바보라 여기며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런 무례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웃으며 사는 사람들은 화를 낼 줄 몰라서 안 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진심이 되는 날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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