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든 일일까?

by 그리다

어릴 적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내가 "일할게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라고 투정을 부리자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의 신체 중에서 제일 게으른 게 눈이다."라는 명언. 사람은 눈으로 먼저 보고 힘듦에 대해서 지레짐작을 하기 때문에 눈으로 일하지 말고 몸으로 일하면 어떤 일도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해주신 말이었다.(오늘도 나는 이 말이 고대의 철학자들의 입에서 나온 명언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당시에는 일이 고되었던 탓에 이 말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은 계속 내 머리를 맴돌았고 스무 살의 나이에 다다랐을 때쯤, '힘듦'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힘이 든다는 느낌'에는 일이 완료되기까지의 걸리는 시간, 대상이 가진 물리적인 질량, 수행을 위해 필요한 전문성들이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개인이 가진 신체적인 역량에 따라 이 힘듦의 역치(※생물이 자극에 반응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힘듦을 정의하고 계량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이 섰고 이내 생각하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더 이상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보통 짜증을 낸다거나 '나한테 너무 과한 일이 주어진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내가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게 정말 진실된 감정일까?'라는 의심부터 한다. 그 이유는 힘든 일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사람의 역량으로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내가 하지 않으면 결국 이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힘들다는 이유로 내 일을 내팽개치지 않기 위해서 이런 의심을 하는 것도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느끼는 힘듦을 낮게 보는 것은 실제로 죽을뻔한 고비(한여름에 물도 없이 수십 킬로의 행군을 하다가 이대로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등)를 몇 번 경험해보니 일상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면에서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 타인에게도 힘들다는 표현을 타인에게 잘 안 하는 게 되는 것도 있다. (이것이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한 편으로는 힘듦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내 무의식 안에 스트레스를 쌓는 행동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가끔 하기도 한다.) 힘들다는 내색을 잘하지 않게 된 것은 몇 가지의 사소한 습관들이 쌓인 탓에 그런 것도 있지만 힘든 순간이 지나고 나면 '굳이 말을 안 했어도 됐겠다.'라는 생각들이 자주 들었던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난해한 일이나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일의 흐름이나 해결방법을 스스로 고민해보고 마무리를 한다거나 정 혼자 힘으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도움을 구하는 편이다. 온라인 상에서 용기를 내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 몇몇 내성적인 지인들을 보면 자신의 힘듦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나 역시나 그들과 비슷하기에 누군가 무심코 꺼내는 '힘들다'라는 말을 함부로 흘려듣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힘듦 또한 상대방도 흘려듣지 않기를 조금은 바라기도 한다. 그 말은 흔하게 내뱉는 것이 아니라 참고 또 참은 뒤에 새어 나온 용천수와 같은 진심일 테니까.


힘듦에 대하여 사람들은 저마다 기준이 있을 것이고 생각이 있겠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힘듦은 사람에게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일이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어떻게든 끝나는 것이지만 사람은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처리가 빠르면 빠른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한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동료들. 그리고 거기서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불편함과 갈등. 나는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할 때마다 일의 강도가 아닌 나와 마주할 사람의 성향이 온전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어딜 가든 꼭 이상한 사람은 한 명씩 있다.) 그리곤 생각한다. 타인 때문에 나 자신을 잃지는 말자고.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사회. 그리고 점점 메말라가는 인심. 눈을 감고 지나온 하루들을 반성해본다. 과거의 나는 누군가의 힘듦이 되지 않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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