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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n 10. 2022

개(강아지) 공포증

 7살 때였는지 6살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창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한창 해가 따스하게 비치던 어느 여름날의 오후. 나는 홀로 집을 나와 옆 마을에 있는 작은 가게를 향해 걸었다. 그 이유는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고, 안타깝게도 우리 마을에는 작은 구멍가게조차 없었기 때문에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옆 마을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 돼지저금통에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몰래 꺼내어 대장부처럼 걸어갔던 길. 그리고 마침내 가게에 도착해 손에 쥔 파란색 소다맛 아이스크림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아이스크림을 당장 그 자리에서 먹어치워도 되었지만 나는 그 시원함을 길 위에서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채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는 생각을 했다. 가게에서 나온 지 5분 정도가 되었을까? 아지랑이와 함께 물웅덩이처럼 보이는 신기루가 피어올라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나는 평생토록 기억에 남게 될 하나의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개에게 목줄을 매는 집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싶기도 할 테고, 굳이 목줄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작은 개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여하튼 보통은 그런 개들이 소란스럽게 짖으며 낯선 사람을 경계해도 마당에서 뛰어만 다닐 뿐 집을 나오는 경우가 없었는데, 그날은 희한하게도 갈색에 가까운 노란빛의 털을 지닌 개 한 마리가 목줄이 풀린 채로 밖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직 개와 나만이 서있는 거리. 약 20M 가까운 거리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개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나에게로 서서히 걸어왔다. 옆으로 빠질 수 있는 골목조차 존재하지 않았기에 집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는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나. 제발 저 개가 유유히 내 옆을 지나가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멍하니 앞만 보며 걸어갔다. 개와 나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다가 마침내 지나치는 순간 나는 속으로 '다행이구나'하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때 갑자기 갑자기 내 종아리 쪽에서 그 개의 콧김이 느껴졌다. 그리고선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개는 갑자기 나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갑자기 짖는 개의 소리에 나는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곤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개를 마주 보았다. 짖을 때마다 선명하게 보이는 송곳니. 내 허리춤의 높이에서 머리를 쳐들고 으르렁 거리는 개의 모습에 나는 의지가 꺾여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개가 허벅지나 무릎 쪽으로 주둥이를 가져다 대려 할 때마다 기겁을 하며 울먹였고, 경련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허수아비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개는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확신이 들면 더 자랑스럽게 짖어대지 않던가? 내가 겁을 먹은 모습을 보이자 재미가 있다는 듯 그 개는 몇 분 동안이고 나를 빙빙 돌며 짖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한참 동안 닭똥 같은 눈물을 쏟고 놀란 숨을 헐떡거렸지만 그 개는 나를 불쌍히 여길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나름의 클라이맥스를 새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 개는 가만히 있는 내 뒤로 스윽 걸음을 옮기더니 이윽고 나의 발목을 물어버리기까지 했다. 복숭아뼈 주위로 느껴지는 선명한 고통. 나는 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참았던 소리까지 터져 나와 더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을까? 잠시 뒤 저 멀리서 농사일을 끝내고 오시는 듯한 복장의 한 할아버지가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며 다급히 뛰어오셨고, 들고 있던 삽을 이리저리 흔들어 개를 쫓아내 주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있던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개는 나에게 트라우마이자 공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내가 가진 공포증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경험을 겪음으로써 공포증을 얻게 된다. 보기보다 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불편하고 힘든 점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 나눌 때도 있지만, 가끔 이런 공포증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강아지 정도는 괜찮지 않으냐?'라거나 '작은 개한테 왜 두려움을 느끼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때로는 '네가 개를 안 키워봐서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이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들이 섣부른 판단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개 공포증을 얻었을 때로부터 5년쯤 뒤에 개를 키웠었고, 개를 키우는 것과는 별개로 트라우마는 계속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반이 나뉜 상태로 끓는 훠궈 냄비처럼, 내 개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개가 두렵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개(강아지) 공포증은 '완화'는 될 수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개 공포증이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어떤 증상을 가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우선 시야에 개(강아지)가 들어오는 순간 몸에서는 이상 반응이 즉각 발현된다. 일단 개와 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박수는 빨라지고 손이 살짝 떨리면서 숨이 조금 가빠진다. 이와 더불어 (개는 단순히 친해지고 싶어서 오는 것이겠지만) 개가 신발이나 바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약간의 가슴 통증과 함께 약 3~4초 정도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심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패닉 상태에 빠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저 몸이 긴장하는 상태에 빠진다고 보면 된다.


 개 공포증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를 미워한다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개에 대한 공포증이 있으니 '당연히 개를 못 만지겠지.', '개를 무서워하니까 오히려 개한테 해를 끼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공포증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어서 공포증이 생긴 게 아니라 나처럼 방어적인 행동의 결과로 공포증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개들이 많이 있는 곳을 피해 다닐지언정, 지나가는 개들에게 함부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요즘은 마을을 산책하거나 공원을 걸으면 당연하다시피 개들을 볼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티를 내지 않고 그럭저럭 잘 어울려서 살아간다. 개를 만지는 부분에는 대해서 기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앞서 밝힌 사실처럼) 개를 한 번 키워보았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 다른 강아지를 어느 정도 쓰다듬을 수 있게 긴장이 누그러진다.

  

 지금도 길을 걸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장난도 치고 산책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와 견주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하지만, 간혹 가다가 한 번씩 조금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한적한 공원을 걷고 있을 때, 어떤 애견 카페 사장님이 목줄도 없이 대형견 다섯 마리를 공원에다가 그냥 풀어놓은 적이 있다. 나는 '어어?' 하며 순간 침을 삼켰다. 목줄을 하고 있는 개를 보면서도 긴장을 하는데, 아예 말릴 사람도 없이 풀어놓은 개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몸이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껴버린 것이다. 그런데 목줄이 없는 개를 보며 불편함을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산책을 하던 아주머니들이 애견카페 사장님에게 다가가 화를 냈던 것이다. 왜 개들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장님이 답을 했는데 그 이유가 참 이상했다. '사람이 잘 없는 공원이어서 그냥 예전부터 목줄을 풀고 다녔다.'라는 것이다. 결국 이 말 때문에 실랑이는 길어졌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그 공간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이런 일 외에도 길을 걸으면 맹견으로 분류된 개들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않는다던가, 목줄을 과하게 늘어트려 사람이 도보를 지나다닐 수 없게 만든다던가, 자신의 개가 싸는 똥을 길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두는 행위들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는 공포증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는 행위이니 만큼 견주들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며 나는 결국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공감과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견주들은 개에 대한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반대로 공포증을 지닌 사람들은 견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나를 물었던 그 개를 미워하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뭐 그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개가 뭐 그럴 수 있지 않나?'라는 말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내가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견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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