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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May 22. 2023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서에 대한 열망

 학교에서 일을 하며 아이들의 일과를 자주 보다 보니 문득 나의 생활기록부가 궁금해졌다. 비록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분명히 내가 살아온 기록 중 하나였고, 지금의 나를 만든 시발점이기도 하니 그 내용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생기부를 뽑기 위해서 직접 학교 행정실로 찾아가서 인쇄를 부탁해야 했지만 지금은 본인 인증만 하면 손쉽게 온라인으로 볼 수 있었기에, 나는 얼른 나의 생기부를 다운로드하였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고등학생 때의 생기부를 쭉 읽어 내려가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이유는 바로 담임 선생님께서 의견을 남겨주시는 항목에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때 당시의 담임 선생님의 얼굴과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잠깐의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당시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사립으로 운영되는 학교였다. 따라서 설립자의 의견에 의해 교칙이나 학교 운영방식이 제멋대로 바뀌곤 했는데, 그 덕분인지 내가 입학하기 전부터 학교에는 '특별반'이라는 조금 독특한 형태의 반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 반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반으로 성적이 좋은 상위 20%의 아이들을 선발하여 한 반에 몰아넣는 형식으로 운영하였는데, 대체로 아이들의 성적은 일정하게 유지되어서 그런지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항상 같은 반에서 볼 수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라는 시선이 있는 만큼 아이들은 특별반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그런 학생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바로 특별반 담임 선생님이었다.


 특별반은 대개 좋은 대학교로 진학을 하였기에 부모님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또 학교에서는 매년 초 졸업생들이 수도권 대학이나 유명 대학교로 몇 명이나 입학했는지 등을 플래카드에 적어 학교 홍보를 하였기에 특별반은 본인을 위해서든, 학교를 위해서든간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녔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담임 선생님께 가중되는 부담감도 커져서, 특별반 아이들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거나 태도가 불량해지면 학교에서는 즉각 담임선생님을 호출하여 '아이들을 제대로 관리하라'라며 암묵적인 압박을 넣었다.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눈치 없는 학생 1을 담당했다. 운 좋게 성적을 잘 받아 특별반으로 진학은 했지만 마음이 맞던 중학교 친구들이 모두 다른 고등학교로 떠났던 탓에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공부는 무언가 손에 안 잡히고, 그렇다고 해서 소란스러운 일들을 만드는 일진들처럼 말썽을 부리기는 싫었던 시기. 따라서 나는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책으로 쓸쓸하던 마음을 달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옆구리에 항상 책을 끼고 다녔던 나는 어찌 보면 담임 선생님에게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같은 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달고 사는데, 나는 그저 독서에만 몰두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임 선생님께서 뭐라 하기도 애매했던 것이 주로 내가 읽는 책들은 청소년 추천 도서라거나 '달과 6펜스', '레 미제라블'과 같은 고전 명작들이었기에 나는 도로를 달리는 순찰차처럼 방해 없이 나의 생활을 마음껏 향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라는 나만의 일탈은 드디어 예정된 한 가지 사건을 불러일으키고야 말았다. 모두가 서로의 답을 맞혀보며 성적을 가늠해 보는 시험기간에도 내가 책을 읽고 있으니 결국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나를 불러내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00(필자)이는 이제 책을 좀 그만 읽고, 공부를 좀 하면 어떨까?"


 영어 과목을 담당하셨던 탓에 평소 유려하고 나긋나긋했던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보기 드문 단단한 소리가 나왔다. 그리곤 마른 체격이었던 선생님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가득 선 것이 보였다. 네모난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과 입은 웃고 계셨지만 왠지 모르게 분노의 기운이 가득 느껴졌던 담임 선생님. 나는 그 기세에 눌려 앞으로는 공부를 하겠다고 거듭 다짐의 말씀을 드리고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읽고 있던 책은 마저 다 읽어버렸다.)


 물론 이렇게 끝나버린다면 '독서에 대한 열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은 내 생기부에 적히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과 약속했기에 시험기간에는 교과서를 꺼내긴 했지만 그 외의 시간들은 언제나처럼 책만 주야장천 읽기 바빴다. 물론 이런 모습이 선생님께 자주 노출되긴 했지만 내 성적도 얼추 잘 나왔겠다, 특별히 사고 치는 일 없이 조용히 있었다 보니 이후부터 선생님께서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을 말없이 지지해 주셨다. (담임 선생님 덕분에 시 낭송 대회, 백일장, 대학교 인문학 강의 등등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 내용 또한 생기부에 고스란히 담겼다.)

 

고등학교 생기부에 적힌 당시의 내 기록


 다시 한번 읽어보는 문장에서 왠지 모르게 담임 선생님의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타인이 보기에는 좋은 말들로 보이겠지만, 내가 읽기에는 저 말들 속에 '공부를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음.', '책만 죽어라 보는 고집불통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소를 지으며 생기부 창을 닫으니, 다 타고 남은 향로에서 솟아나는 잔향처럼 당시에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셨던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와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의 기억 속에 남든, 글로써 남든 간에 기록은 어떤 형태로든 남는다는 사실을.


 오늘의 내 기록은 훗날 읽게 되었을 때 오늘과 같은 미소로 돌아오게 될까? 물론 그 기록들이 얼룩지지 않게 매 순간의 나를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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