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고등학생들은 수능 준비와 함께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교와 학과들을 탐방한다. 이때 대학교 입시와 관련된 책자를 보다 보면 하나의 학교 안에 인문, 자연, 예체능, 경제, 공학 등 다양한 계열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계열 안에서 또 세분화되어 엄청나게 많은 학과가 있음을 알게 된다. 보통 학생들은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에 맞는 학과를 고른다거나 평소에 생각해두었던 학과로 지원을 많이 하게 되는데, 책이나 글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경우 대표적인 몇 개의 학과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글과 관련된 이야기나 한글의 정수를 알려줄 것 같은 국어국문학과. 흥미로운 역사와 이야기들을 가르쳐줄 것 같은 사학과. 그리고 글쓰기 기술이나 습관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문예창작학과까지. 그중에서도 문헌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서인지 많이들 지원을 하는 학과가 오늘 이야기해볼 문헌정보학과이다.
문헌정보학이라는 이름을 얼핏 들으면 무언가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룰듯한 느낌이 든다. 문헌은 책을 뜻하니까 책과 관련된 정보를 배울 것만 같고, 책은 글을 통해 만들어지니까 글쓰기도 배울 것 같고, 나아가 책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독서가 있으니까 독서법도 배울 것 같다고. 하지만 이런 상상은 딱 절반만 맞다. 문헌정보학과에서는 책에 관련된 전반적인 정보들을 배우는 것이 맞지만 책 읽기나 독서법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는다. 물론 학교에 독서와 관련된 과목으로 박사학위를 따신 교수님들이 있다면 전공 시간에 이것을 배울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그럴 기회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헌정보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울까? 크게 구분을 하면 도서관, 책, 콘텐츠, 정보 서비스를 배운다고 보면 된다. 첫째 '도서관'은 도서관의 형태와 구조, 도서관의 의의 등을 익히고, 전문 도서관 관련 정보와 도서관 내부를 구성하는 유비쿼터스(정보통신환경)에 관련된 것을 배운다고 보면 된다. 두 번째 '책'은 책이 가진 정보(표제, 목록, 삽화, 특징, 저록, 표목, 분류, 참고자료 등)와 분류법(한국식 십진분류법, 미국식 분류법 등)을 배운다. 물론 인쇄 법과 활자, 인쇄물의 특성에 대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더해 컴퓨터가 책의 데이터를 읽을 수 있도록 코드화 하는 방식인 MARC(Machine Readable Cataloging)을 필수적으로 배우고 나아가 전자책 기술이나 무인 도서반납기를 사용하면 알 수 있는 RFID(무선인식 기술)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세 번째 '콘텐츠'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그램과 플랫폼 등에 대해서 배우고,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멀티미디어에 대한 전반적인 학문을 배운다. 이에 더해 요즘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작권과 관련된 사례나 법령을 배우게 되고 정보들이 오고 가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을 통칭하는 네트워크(서버, 허브, 클라이언트 등)에 대해서도 배운다. [이때 부호나 코드에 대한 것(ASCII, EBCDIC)을 함께 배우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네 번째 정보서비스는 정보제공자로서의 사서 역할, 도서관별 사서의 특성화 및 전문화 등에 대한 것을 배운다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만 봤는데도 어떠한가? 약간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지 않는가? 책 읽기는커녕 글쓰기에 대한 것은 거의 가르쳐주지 않는 학문. 책을 좋아했던 나 역시도 처음에 전공학문을 배울 때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내가 이런 걸 배우러 온 건 아닌데...'하고 말이다. 내가 전공과목들을 굳이 이렇게 나열한 것은 사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한 사람들이 학문에 대한 괴리감과 복잡함에 질려서 편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문헌정보학보다 좀 더 실용적인 경험을 얻고 싶어서 휴학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문헌정보학과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상상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다르며, 전공으로 배우는 것들은 이런 것이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이런 의외의 정보들을 나열했음에도 아직까지 문헌정보학과에 대한 열의가 차오른다면 그 선택은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나아가 조금 더 명확하게 미래에 대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학과의 현실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
사서는 기본적으로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격증은 1급 정사서, 2급 정사서, 준사서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문헌정보학과는 전문직 인재를 기르는 학과답게 학과 안에서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졸업만 하더라도 '2급 정사서'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
1급 정사서의 경우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사서로써의 충분한 경험을 충족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으면 취득을 할 수 있다. 준사서의 경우 전문대나 사서교육원 졸업 또는 부전공으로 문헌정보학을 선택하여 졸업할 시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특이사항이라고 한다면 대학교 생활중 같은 학년 안에서 성적이 10% 안에 들어가는 경우 교직이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과 관련된 자격증과 사서 자격증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은 '사서 교사'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두 가지 학문을 배운 사람답게 취업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게 된다.
이렇게 고생해서 사서자격증을 얻었다면 이제 취업을 바라보고, 꿈에 그리던 사서로써 발돋움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그 과정이 정말 녹록지 않다.
일찍이 공무원 사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 도서관에 들어간다고 가정을 한다면 경쟁해야 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 일단 한 지역만 놓고 봐도 매년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는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 이에 더해 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졸업생들과도 함께 경쟁해야 한다고 따지면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기타 사서교육원 졸업생들과 부전공자들까지 더한다면, 결국 몇 개 되지 않는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 여러 사람이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도서관과 관련된 설명을 하자면 공공도서관은 지역 내에 있는 수 많은 이용자들이 방문을 하기에 업무량은 비교적 높지만 도서관의 운영이 시청이나 구청 등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부조리도 적고 월급 또한 안정적으로 지급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런 장점들 때문인지 정말 많은 사서들이 몰리는 경우가 있어서 경험이 적은 사서는 서류전형에서부터 떨어질 때가 종종있다.
공공도서관을 제외하면 나름 블루오션으로 통하는 다른 도서관을 만나볼 수 있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공고가 올라오는 생소한 도서관들(작은 도서관, 교회 도서관,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 박물관 내부 도서관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도서관들은 지원하는 사람은 적지만 특수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잘 확인을 해야한다. 작은 도서관의 경우 마을 안까지 가야 하니 자가 차량이 있어야 한다던가,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종교가 일치해야 하는 등 각각의 도서관들 마다 조건이 까다로워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간의 위안이라고 한다면 졸업대상자나 취업 우선 대상자, 청년 취업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도서관이 있는데, 이런 곳에 지원을 하게 되면 사서로써의 첫 발을 내딛기가 수월해진다. 다만 '청년'이라는 가산점이 다른 경력직 사서에게 주는 가산점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기에 자격증 부분에서 추가적인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로 처음 뛰어드는 사서의 경우 잦은 경쟁과 실패들이 자꾸 반복되어서 낙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도전을 해볼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 고민을 하는데, 이때 종종 학교나 도서관으로 책을 납품하는 업체에 취업한다거나 도서관 관련 보안업체, 기타 서점이나 출판사 등에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들로 글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 이글을 마무리 해보고자 한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학생으로써, 또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는 직장인으로써 사서는 정말로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장점이라 한다면 사서는 전문직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관련 직장 등에서 대우가 좋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행정직군에 있는 사람들 보다 임금을 높게 받는 경우가 많고, 교육과 관련된 도서관에 취업할 경우 높은 임금을 받는 유형(교육과 연관된 유형)으로 분류됨은 물론, 사서 자격증과 관련된 수당 또한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쏠쏠한 매리트가 있다.
그 밖에도 일반 기업 사무원과 비교했을 때(일이 많은 도서관 제외) 출퇴근 시간이 항상 일정하고, 개인 여가 시간이 있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의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장점은 상급자와 부딪히는 일이 비교적 적다는 것인데, 일 때문에 힘든 것보다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이 많은 요즘 직장을 생각하면 이만한 장점은 좀처럼 마주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때때로 다른 학문, 다른 선택이 부러워지는 날이 올 수 있다. 하지만 편하게 사는 삶은 존재하지 않듯이, 결국 우리는 눈앞에 놓인 수많은 가시밭길 중 하나를 선택했고 꿋꿋이 나아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된 길을 걷는 것도, 그것을 이겨내는 것도 모두 본인이 감내해야 하는 것.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확실함이 가득한 미래라도 스스로를 믿고 끈질기게 달려 나가면 결국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도달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역시도 작은 선택과 큰 믿음, 이 두 가지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