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한 지 약 1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나를 어색하게 여겼던 아이들. 하지만 지금은 학년이나 성향을 불문하고 내 옆자리로 와서는 즐겁게 말을 건다. 어떤 아이는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또 어떤 아이는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밖에도 아이들은 게임, 유튜브, 연애, 군대, 영화, 직업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종종 한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해서 그런 것일까? 몇몇 아이들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눈을 반짝이며 쉼 없이 이야기를 쏟아낼 때도 있다. 쉬는 시간에 다하지 못하면 다음 쉬는 시간에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이야기가 길어지겠다 싶으면 점심시간에 찾아와서 길게 이야기를 한다. 이런 소란스러운 일상은 매번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지만, 가끔 일이 많은 날에는 업무를 하랴,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으랴 정신이 없을 때도 있다.
충실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행복이 가득 찬 나날들. 나의 하루에는 매일 미소가 끊이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날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나에 대한 좋은 말을 툭 던지고 갈 때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올 때면 반갑게 맞이하긴 하지만, 마음을 울릴 만큼 좋은 얘기를 해주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를 보면서 "쌤 진짜 착하신 것 같아요. 애들이 장난쳐도 화내시는 거 한 번도 못 봤어요."라던가 "쌤만큼 진짜 애들한테 잘해주는 사람 없어요." 같은 말로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말을 해주는데, 이럴 때면 나 스스로 아이들한테 더 잘해줘야지라며 주먹을 불끈 쥐곤 한다.
최근에는 아이들과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탓인지 아이들이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는데, 12월이라 그런지 유독 나의 거취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느껴진다. 학생들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선생님들도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는 일 년의 마지막 기간.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나와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가 보다. 높은 학년으로 올라가는 1, 2학년 아이들은 나를 보며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있어주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하고, 고등학교로 떠나가는 3학년들은 "쌤 저희 학교로 오세요."라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나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오라는 데가 많아서 참 뿌듯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이 참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단 결론적으로 나는 1년 더 같은 학교에 머무른다. 3학년 아이들은 "쌤 그러면 내후년에 볼 수 있겠네요?"라고 설레발을 치지만, 나는 웃으며 "너희 학교에서 오라고 안 하면 못 볼걸?"이라며 답변을 돌려준다. 정말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몇몇의 아이들은 학교에 진학한 뒤 건의서를 제출하겠다면서 야단인데, 아이들의 말대로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꽤나 즐거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아직은 근무를 했던 첫 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는 않는다. 다만 앞으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행복이, 익숙했던 사람과 멀어질 때의 슬픔을 능가할 수 있을까? 지금껏 겪어왔던 나의 경험으로는 무척이나 어려울 거라는 예측이 들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건 알 수 없는 것. 그때의 감정은 그때의 내가 감당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