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는 겨울 방학기간이다. 보통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이런 기간에 큰 공사를 많이 진행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화조 배수관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학교는 덜컹거리는 중장비들의 소리로 아우성이다.
공사는 식당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 정문까지 진행을 하는데, 배수관을 묻기 위해 바닥을 전부 파내야 하는 탓에 본래 주차장으로 쓰고 있던 학교 뒤편 공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행정실에서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는 선생님들을 위해서 운동장 쪽에 자동차를 대어 달라고 안내를 했다. 그곳은 50m 트랙과 벤치가 몇 개 있는 말 그대로 그냥 공터. 그 탓에 지정된 자리가 아니라 먼저 오는 사람 순서대로 안쪽에서부터 차곡차곡 주차를 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가장 먼저 출근을 했던 탓에 운동장에서 가장 가까운 쪽. 축구 골대의 바로 왼쪽 뒤편에 주차를 했다.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이 서가를 정리하고, 공문들을 확인하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의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쌤!"이라면서 반갑게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어쩐 일로 왔느냐고 물으니 학교에서 축구를 차려고 다들 모였다고 한다. 나는 추운 날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러 온 아이들이 기특해서 회의 때 쓰고 남은 과자들을 몇 개 쥐어주었다. 그리고 추우니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재미있게 놀다 가라는 격려를 하며 곧장 운동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배웅했다.
다시금 나는 책의 배열을 보기 위해서 서가 쪽으로 향했는데, 문득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차면 축구공이 주차해 둔 내 차에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가로 가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딱 그 순간에 아이들의 발끝에서 시작한 공이 골대를 지나쳐 내 차 범퍼에 직격 하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일순간 굳어버린 나의 몸.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내 차가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운동장으로 향했다.
도서관 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속으로 '애들한테 이쪽으로 차지 말라고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조금은 단호한 표정도 지어보자고 다짐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운동장으로 나가서 아이들이 해맑게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계획했던 것들이 눈 녹듯 사그라들게 되었다. 그리곤 앞다투어 이런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지 않나?'라는 생각. 운동장은 공을 차라고 만든 곳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을 차는 것인데, 그걸로 뭐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가지 않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축구 골대의 뒤편, 내 차가 있는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쪽으로 공이 날아오면 그냥 내가 막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그리곤 내가 밖으로 나온 이유를 모른 채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에게 공을 무척이나 잘 찬다며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처음에는 뭐 이러면 되겠지 싶은 마음에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구경했는데, 10여분 정도가 지나니 초등학생 몇 명이 더 추가가 되어서 공을 차는 인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잘못 차낸 공도 주워주러 가랴, 골키퍼도 서랴 내 차에 신경을 못쓰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골대로 빗발치는 공들이 하나 둘 내 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치 핀볼 게임을 보듯이 공이 앞, 뒤 타이어를 맞추고, 자동차 바닥 틈새에 끼기도 하며, 가끔 범퍼를 맞추는 순간에는 퉁! 하고 소리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서로 "야! 그쪽으로 차면 안돼." 하며 소리를 질렀고, 차 주인이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이 장면을 들켜서 혼이 나지 않을까 사슴 같은 눈망울로 주변을 살피는 모습. 그 귀여운 얼굴을 보는데 어찌 화가 날 수 있으랴.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차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해해 주실 거다라고 아이들을 달랬다.
하지만 공으로 몇 번 자동차를 맞춘 탓이었는지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아까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며 공을 차지 않았다. 무언가 얼어붙은 것 같이 삐걱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발로 그저 툭하고 조심스럽게 공을 굴리기만 했다. 반대쪽 골대는 이미 누군가가 사용을 하고 있어서, 아이들은 이쪽 골대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마음껏 공을 차지 못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아이들이 모여있는 골대 앞 페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걸어갔다.
골키퍼를 곧잘 하는 아이에게 키퍼를 한 번만 서 달라고 말하고 나는 멈춘 공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내 차가 있는 쪽으로 공을 뻥하고 찼다.
뒤쪽 타이어에 맞고 튕겨 나오는 축구공. 아이들은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눈치를 봤지만, 내가 크게 소리 내어 웃자 하나둘 같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이다 싶어 아이들에게 공을 정확히 차는 게 쉽지 않다고, 그래도 자동차가 튼튼해서 다행이네라고 이야기 했다. 아이들은 내가 실수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탓인지, 아니면 같은 공범(?)이 되어서 묘한 안심을 하게 된 것인지 다시금 공을 잡고 적극적으로 슈팅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어 잠깐동안 지켜보았는데, 다행히도 아이들이 더는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공을 차지 않아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곤 오후에 계획해 두었던 업무를 하나씩 마무리한 뒤 이 날의 감상을 써 내려갔다.
내 물건이 훼손되어서 짜증이 나는데도, 그것을 아득히 덮을 만큼의 애틋한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 일상에서 좀처럼 겪을 수 없는 묘한 상황이기에 나는 이 순간을 곱씹어본다. 이 신기한 상황을 오래도록 기억해야겠다고. 그리고 마냥 짜증을 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