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책들 여기에다 두고 갈게요~"
이렇게 들려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오늘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책들이 도서관에 한아름 던져진다. 나는 차마 안된다고는 할 수 없으니,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책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깨끗하던 공간이 점점 먼지 묻은 책들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사실 이렇게 불필요한 책들을 도서관에 던져두는 행위들은 종종 있어왔다. '하냐, 안 하냐' 보다는 '언제 하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학교 도서관에서 맞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나는 이제야 '아차!' 하며 나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다.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책은 다양하다. 정상적이고 깨끗한 책들도 있지만 대개는 상태가 나쁜 책들이 많다. 이사를 하기 전 이삿짐의 무게를 비워내기 위해 버리는 책. 몇 년 동안 수업에 쓰다가 담당자가 바뀌어 폐지처럼 무더기로 들어오는 교과서와 참고서. 기타 집에서 보던 간행물이나 별의별 인쇄물 등. 종이로 모든 종류의 물건들이 버려지듯,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책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야 '알아서 하겠지.'라며 쉽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도서의 처리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개인이 소장했다가 기증하는 책은 소장가치와 활용가능 여부에 따라서 구분을 해야 하기에 번거롭다. 또 구분을 완료하고 난 뒤에도 다시 이 책들에 대한 정보를 시스템상에 입력하고, 책 자체에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인 '장비작업'을 추가로 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소요된다.
수업에 쓴다고 오래전에 반출된 책이나 과목 선생님께서 수업용으로 별도 구매한 도서의 경우에는 처리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무언가 등록번호가 부여되어 있는 책들은 누가, 언제 등록을 한 건지 알 수 없으니 해당 정보를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등록이 안 된 책은 언제, 어떤 예산으로 구매를 했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는지를 모르니 그 내역들을 모두 확인하여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긴다. (장비작업은 당연히 덤이다.)
그냥 못쓰는 책이라 생각하고 다 버리면 되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을 버리는 것도 폐지 버리듯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책상이나 의자와 같이 책 또한 구매를 진행한 기관에 소속된 재산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관법에 명시된 폐기 기준(폐기 가능 권수, 오손, 훼손, 절판도서 유무 등)에 따라 책을 선정하고, 협의회의 회의를 거친 뒤 최종 승인권자의 결재를 받아야만 책을 폐기처리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도서들을 처리하는 일에는 많은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니, 혼자서 이 과정을 모두 감내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체력이 축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냥 '에이 몰라'하고 도서관 구석에 있는 서가에다가 쌓인 책들을 모조리 꽂아놓으면 훨씬 수월하기야 하겠지만, 훗날 내 역할을 담당하게 될 사서가 머리를 부여잡고 이 책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을 상상하면 차마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몇 번 당해보니 그 수고가 정말 말도 안 되게 컸다.)
잠깐의 푸념을 늘어놓긴 했지만 또 한 무더기의 책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개운하다. 분명 책이 좋아서 시작한 사서라는 직업이지만, 읽기 위한 책과 일을 하기 위한 책은 마주할 때마다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금융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봐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듯이 말이다.)
무릇 사물이든 공간이든 변화 없이 멈춰있는 것은 낡고 퀴퀴해질 뿐이다. 내가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이 그런 창고와 같은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한 마음이 크다. 그저 책을 '보는' 사서가 아니라 책을 '어루만지는' 사서가 되기 위한 다짐. 오늘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