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상상할 수 있는 최악 저 너머로.
스스로 붙여놓고도 제목이 참 오싹하다.
그 '사소한 일'이 뭔데? 하는 거부감이 올라올 지경이다.
'사소한 일'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이다. 그걸 '실수'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다.
지극히 흔하고 평범한, 때로는 인간적으로까지 보이는 생각, 말, 행동.
그중 하나, 혹은 둘, 심지어 셋 모두를 조합하여 어떤 사람이 벌인 사소한 일 하나.
너무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린들 잘못된 선택은 하기 마련 아닌가.
신이 아닌 이상 항상 최선의 길을 알 수도 없고 말이다.
우리는 삽질과 실패, 선택 오류를 너무도 두려워한 나머지 그것이야말로 곧 골로 가는 길이라 믿어버린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실수는 제아무리 심각해도 인생을 골로 가게 만들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지언정,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삶이 망가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수'와 이 미묘한 표현, '사소한 일'의 차이는 무얼까?
어쩌다 보니 나는 포승줄에 묶인 사람과 딱 붙어 이야기하는 일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은 할 말이 있는 편이라고 할까.
내 앞에 갈림길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현재 직업에 큰 불만은 없지만 딱히 행복하거나 보상이 크지도 않은 상태다. 그런데 누군가 솔깃한 일자리를 제안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나름 머리를 굴려 적절(하다고 당시에는 생각)한 길을 고른다.
이후 그 길에서 몸을 굴리며 애쓰다가 잘못되는 일은 '실수'가 맞다. 그저 운에 맡길 뿐, 누구도 100% 피할 수는 없을 시나리오다. 물론 쓰디쓴 고통을 맛보고, 들인 시간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는 있다.
그래도 실수의 특징은 실수 선에서 끝난다는 점이다. 게다가 꽤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배움과 전화위복의 기회를 갖기까지 한다.
반면, 진정 삶을 골로 가게 만드는 사소한 일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들면 수행할 업무의 내용도 미심쩍고 회사의 정체 역시 수상하다. 취약층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의심마저 든다고 치자.
'그건 좀 그렇지 않나?' '인간적으로 그렇게까지...' '뭔가 찜찜한데' 하는 식의 자각이 불쾌한 기분을 통해 반드시 신호를 보내게 되어있다. 물론 이를 인지하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양심의 소리' 운운할 만큼 강력히 느끼고, 어떤 이는 무의식 차원에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어두운 예감은 기다란 그림자처럼 모두에게 드리운다.
일도 덜 힘들고 돈도 많이 주잖아.
설마 별일 있겠어?
남들도 다 나처럼 했을걸?
이 정도는 괜찮아.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정말 평범한 의식의 흐름이고 사소한 일에 불과해 보인다.
물류 센터에서 짐 싣는 일을 하루 종일 하던 남자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메시지로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
기회일까? 남자 역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기차로 지방을 매일 왕복해야 하는 일이지만 보수가 훨씬 좋다. 이동만 잦을 뿐 작업복 차림으로 땀 흘릴 필요도 없다.
비밀 대화방으로 당일 아침에 출장지가 전달되는 점, 거래처 직원과는 늘 전철역에서 만나야 하는 점 등 이상한 구석이 조금(사실은 많이) 보이기는 한다.
앞으로 맛볼 안락한 삶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소한 일'의 사소함은 사라져 버린다.
남자는 몸을 움직여, 다 알면서도, 떳떳함보다는 찜찜함을 세상에 구현했다.
이후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인생을 골로 보내는 디테일‘ 뿐이다.
거슬리는 저 제목보다 백 배는 더 무서운.
누구나 자신만이 아는 어두운 심보와 욕망을 내면에 품고 살아간다. 예외는 없다.
어둠 속에서 가끔 꿈틀댈 뿐, 일상에 미미한 영향조차 끼치지 못하는 '사소한'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간택되어 빛을 보게 되면 눈 깜짝할 새 거대해진다.
그때가 오면 이제 더 이상 통제력을 쥔 쪽은 내가 아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포승줄에 묶인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다 알면서도 돈 많이 주니까, 더 편하니까 그 일을 한 거 아닙니까?
그 질문에 남자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흐느낌이 목구멍을 막아댈 때마다 '난 이제 끝났어'라고 옲조렸다. 꺼어억, 난 이제 끝났어, 으허허억, 난 이제 끝났어.
물류센터 일을 하고 들어오면 꿀잠에 곯아떨어지고, 월급날마다 감사에 넘쳤다는 산골 청년.
이직 후 언젠가부터 두 다리 뻗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흉악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대수롭지 않은 디테일이 마음에 걸릴 뿐인데,
왜 이제는 퇴근 후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지 스스로 의아했다.
그 이유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남자는 보이스피싱 운반책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