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가재가 되어버렸다
택시를 몰기 전까지는 몰랐다.
사람을 매일 태운다는 건, 그들의 진짜 얼굴을 매일 본다는 뜻이라는 걸.
처음에는 단순히 운전만 잘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통법규 지키고, 안전하게 몰고, 목적지에 무사히 내려드리면 끝이라고.
하지만 불과 보름 남짓 운전대를 잡아본 지금,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달았다.
택시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분과 성질, 피로와 불만까지 함께 싣고 달리는 공간이었다.
#욕은 도로에 남고
금요일 오후, 강남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모두가 아는 시간대, 모두가 아는 도로.
차는 한 뼘도 앞으로 나가기 힘들 만큼 막혔고,
뒷자리에서 쉴 새 없이 한숨과 원망 어린 욕설이 터져 나왔다.
“운전 ㅈ같이 하네.”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막힌 게 내 잘못이 아닌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욕은 분명히 나를 향해 던져진 것이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인 기사가 화풀이 상대가 되는 것.
그게 이 일이 가진 구조라는 걸 그때 처음 절감했다.
며칠 전에는 신촌의 한 병원 앞에서 손님을 태웠다.
의사처럼 보이는 양반이었는데, 피곤해 보인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피곤함이 그대로 내 쪽으로 흘러들어왔다.
짜증 섞인 말투, 찡그린 표정.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낯선 사람의 피로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순간.
나는 그날,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더 지쳐버렸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길은 어긋난다
스마트폰이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토종 지도 앱이 나온 것도, 위치 공유 기능이 시작된 것도 벌써 십 년은 훌쩍 지났다.
이제는 누구나 손 안의 지도로 길을 찾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상대에게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 위치 하나 제대로 못 찍는 승객들이 많다.
“여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콜이 잘못 지정된 건 승객 본인이었지만, 화살은 다시 기사 쪽으로 날아온다.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는데,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불편을 만만한 상대에게 떠넘기는 마음.
나는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인간혐오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점점 구체적인 얼굴을 갖추는 걸 느낀다.
#길이 막혀도 오래 달려도 벌이가 크게 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착각한다.
“차가 막히면, 기사는 더 오래 달리니까 돈이 된다.”
하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비록 짧은 경험이지만 택시는 시간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손님 회전으로 수익이 결정된다.
차가 막히는 길에 갇혀 있는 동안 기사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체력과 집중력을 소모한다.
그 시간 동안 새로운 손님을 받을 기회를 통째로 놓치기 때문이다.
진짜 ‘개꿀’은 따로 있는 법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짧은 콜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손님을 교체하거나, 아니면 서울 끝에서 인천공항 같은 장거리 한 건을 잡는 것. 이것만큼 효율적인 경우는 없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승객들이 몇백 원, 몇천 원 더 나온다고 해서 기사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내차를 선택해서 타 준일이 너무나 감사한 일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뒷자리에서 욕 한마디 던지는 게
얼마나 기사에게 큰 타격이 되는지는 모를 것이다.
기사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다.
막힌 도로 위에서 깎여나가는 건 요금이 아니라, 내 몸과 정신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평점은 숫자일 뿐
카카오 T 앱을 보면 기사 평점은 보통 4.8 이상, 심지어 5.0을 유지하는 기사도 많다. 언뜻 보면 기사들이 다들 친절하고 서비스가 뛰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점수는 승객의 요구를 끝까지 맞춰주며 만들어진 숫자라는 걸.
길 위에서는 다른 차들에게 욕을 먹고, 억지 요구를 들어주며 법규를 어기고, 체력을 갈아 넣으면서 얻어낸 결과가 바로 그 평점이다.
높은 점수 뒤에는, 기사들이 길바닥에서 감내한 무수한 불편과 희생이 숨어 있다.
#고단한 생계의 무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도, 한 달을 모아 손에 쥐는 돈은 고작 200 남짓이다.
물론 더 잘하는 기사들은 그보다 많이 벌기도 한다.
나같은 초짜에겐 아직도 먼길인게 분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결국 자신을 더 깊숙이 갈아 넣는다는 뜻이다.
몸을 갈고, 밤을 갈고, 마음마저 갈아 넣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입.
택시 운전은 어쩌면 그런 인생이다.
고단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일.
참으로 버겁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방식.
#이상하게 몰 수밖에 없는 이유
운전하기 전에는 나도 택시 기사들을 오해했다.
왜 그렇게 난폭하게 차선을 바꾸고, 좁은 골목길로 억지로 들어가고, 도로 한복판에 불편하게 세우는지. 그냥 습관적으로 이상하게 운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알겠다.
손님이 부른 위치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골목 안쪽이라도
부르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세워주세요”라는 말이 사실상 불법정차 구역이라도, 안 들어주면 불만이 된다.
거절하면 불친절로 찍히고, 들어주면 도로 위에서 이상한 운전이 된다.
이상한 건 기사들이 아니라, 그 상황 자체였다.
도시 구조가, 손님의 요구가, 그 두 가지 사이에 낀 기사가.
#가재가 되어본 뒤에야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가재는 게 편.”
나는 지금 그 말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택시를 몰기 전까지는 게를 비난했던 사람이다.
왜 저래, 왜 그렇게 몰아, 왜 그렇게 세워. 그런데 이제는 가재가 되어버렸다. 같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순간, 게의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택시라는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품었던 편견과 마주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편견을 하나씩 깨뜨리는 중이다.
하지만 편견이 깨질수록 또 다른 피로가 찾아왔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 이렇게 고단한 줄, 나는 몰랐다.
#진짜 얼굴을 매일 마주하며
택시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곳이다.
일상이나 회사에서는 점잖게 보였던 사람이 택시 안에서는 욕을 내뱉고,
겉으로는 사회적 지위가 있어 보이는 사람도 막힌 도로 앞에서는 짜증을 숨기지 못한다.
나는 그 순간, 누구나 상황 앞에서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걸 배운다.
택시는 그런 얼굴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자리일 뿐이다.
그 얼굴을 하루 종일 마주하다 보면, 집에 돌아와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잠자리에서도 그 목소리가 맴돌고, 별일 아닌 표정 하나가 오래 남는다.
‘인간혐오’라는 말은 결국 거창한 게 아니다.
이렇게 일상의 구석구석을 조금씩 물들이는 기분, 그게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에 선을 하나 그어둔다.
게의 편이 된 건 사실이지만, 게처럼 닮아가지는 말자고.
불쾌한 얼굴을 떠올리며 잠드는 대신, 그날 만났던 괜찮은 한 사람을 기억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내 차 안에서만큼은, 누군가가 더 무겁게 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
사람들의 진짜 얼굴을 매일 보면서도, 나는 내일도 핸들을 잡을 것이다.
그게 내 생계이고, 내 삶이고,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