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강남을 가로지르다

by HONG

#출발


금요일 늦은 오후, 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고속터미널 한복판

하늘 위로 빗방울까지 흩뿌리고 있었다.

고객의 목적지는 대치동.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해 여러 경로를 내놓았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의 강남은 거대한 마굴 같았고,

어느 길을 택해도 결국 도착 시간은 비슷했다.


그나마 몇 분이라도 빠른 길을 골라,

손님께 양해를 구하며 핸들을 틀었다.

“이 길이 조금 더 빠르다고 나옵니다.”

허락을 얻고 나섰지만, 도로는 곧 나를 비웃듯 또 막혔다.



#한숨


차는 신호마다 꼬박꼬박 멈췄고 도로는 주차장 이었다.

승객은 휴대폰 화면을 몇 번 들여다보다가,

작게 고개를 젖히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차 안을 흔들었다.

말은 없었지만, 불만은 제스처로 충분히 전해졌다.

시계를 흘끗 보는 손, 답답하다는 듯 창밖으로 뻗은 시선.

그 모든 것이 나를 향한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나는 앞만 바라봤다.

강남의 금요일 오후는 누구도 뚫을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알았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적은 내 귀 속에 오래 맴돌며,

내 마음을 천천히 짓눌렀다.



#클레임


그 순간, 얼마 전 회사에 상담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우연히 앞에서 한 선배 기사가 클레임 소명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불만은 이미 접수돼 있었다.

그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신호 체계, 도로 상황, 우회 경로까지 조목조목 설명했지만,

소명은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냥 그렇게 끝났다.


주의 조치 같은 게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하나였다.

시스템은 언제나 고객의 편이라는 것.

그 상황에서 기사는 아군이 없었다.


남은 건 그 선배의 씁쓸한 표정과, 차고지에서의 담배 한 대뿐이었다.



#감사


목적지에 도착해 말했다.

최대한 친절한 톤으로, 외치듯 크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돌아온 길이 아님을, 일부러 막힌 길을 택한 게 아님을

알아달라는 마음을 실려 보낸다.


그건 불만을 막기 위해 내가 쓸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방어막,

방패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을 진짜 감사로 받아들일 손님은 없을지언정,

그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시스템


한숨 하나는 언제든 클레임으로 바뀔 수 있었다.

서울시 민원으로, 혹은 카카오 앱의 신고 버튼으로.

심각해지면 배차 제한이나 콜 제한 같은 제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도 한다.

회사로 클레임이 들어오면 기사는 내용을 소명하며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이었다.

시스템은 형식만 갖췄을 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결국 모든 부담은 기사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단지 길이 막혔다는 이유만으로.



#반응


이제는 욕을 하던 손님이나,

한숨을 크게 쉬는 손님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마다 위가 쓰라리고 아파온다.

가슴은 돌덩이처럼 답답해지고,

신경은 바늘 끝처럼 예민하게 곤두선다.


길이 조금만 막혀도, 신호에 잠시만 걸려도,

나는 이미 뒷좌석에서 불만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길 위의 책임


그리고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이 막히는 건 도시의 구조 때문이고,

클레임이 쌓이는 건 플랫폼의 방식 때문이었다.

책임은 늘 기사에게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기사를 지켜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이름의 장치들은

결국 기사에게는 더 큰 압박이 될 뿐이었다.

길 위에서도, 차 안에서도.



#이유


내가 브런치에 이런 글을 써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것도,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으면,

내 위는 더 쓰라리고 아플 것이고,

내 마음은 더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며,

앞으로의 운전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어찌 됐든 지난 금요일 오후의 강남이라는 마굴 안에서.

차는 멈춰 있었고, 나 역시 멈춰 서 있었다.

그러나 시계는 여전히 돌아갔고,

앱은 여전히 평점을 매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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