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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

독립서점 여름서가 글담 프로젝트를 통한 완결 배우기

by 율성휘

우울증 진단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가 방전되는 바람에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일쑤였다. 먼지 한 톨도 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시간. 그 끝을 알 수 없어 무력해지는 날들. 일어나면 안 되는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자신도 구분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하루가 길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로 금방 지나갔다. 그 나날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아주 작은 바람 같은 희망이었다. 나도 언젠가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다시 쓰고 싶을까. 마음 한편에서 희미하게 남아 있던 글의 온기가 그때의 나를 흔들었다.


어느 날 독립 서점 여름 서가에서 ‘글담 프로젝트’ 신청서를 마주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POD 출판을 통해 실제 책을 만든다는 소개 문구.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저 스쳐 지나가려던 눈길이 걸렸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손을 뻗었다. ‘완결’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끝까지 가보는 일. 한때는 자연스러웠던 그 일이 이제는 가장 낯설고 두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안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누군가는 나처럼 종일 침대에 누워 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아주 작고 불안한 발걸음이었지만.


처음 모임에 갔던 날,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조금 가빴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노트북을 열고,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갔다. 누군가는 뜨거운 숨으로, 누군가는 조심스러운 손끝으로. 페이지 위에 쌓여가는 문장들은 삶의 조각들이었다. 살아냈다는 증거, 버텨냈다는 증언. 그날 처음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우울함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조용한 응원과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격려는 크지 않았지만 진실했다. “글이 너무 좋아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다음 날로 끌어올렸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난생처음 ‘완결’이라는 것을 해냈다. 문장을 마침표로 닫는 순간, 손끝이 약하게 떨렸다. 눈물이 나지 않을 만큼 건조한 마음이었지만, 분명 미세하게 빛이 스며들었다. 완성된 원고를 품에 안고 돌아오던 날, 지하철 창밖의 풍경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아직 우울함이 완전히 떠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평평한 하루 속에 갑작스러운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누군가가 나를 끌어올린 게 아니라, 내가 아주 천천히 자신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나를 침대에서 나오게 했던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행위였다. 깊이 숨어 있던 감정들이 단어가 되고, 낯선 생각이 문장이 되면서 나는 조금씩 살아 있다는 걸 실감했다. 때때로 한 줄을 쓰기 위해 하루를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 줄이 내일을 향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관계가 때로는 숨을 조이고 때로는 숨을 틔운다는 걸 배웠다. 이 모임은 숨을 틔우는 쪽이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안의 침묵도 조금씩 풀려나갔다.


우울은 여전히 내 삶의 한구석에 자리한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아마도 오랫동안 나와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날이 있어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글이라는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나는 계속 걸어갈 수 있다. 나를 움직인 건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들이었다. 어떤 날은 단 한 페이지, 어떤 날은 단 한 문장. 그렇게 쌓아 올린 글들이 결국 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조용히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라고 해도 나아가려 한다. 언젠가 더 밝은 곳에 서 있을 거라는 확신보다는, 오늘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믿는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고 삶은 여전히 무겁지만, 한 번 완결을 해본 사람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일도 침대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다시 펜을 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나는 충분하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아주 작은 용기를 품고, 한 줄을 쓴다. 그리고 그 한 줄이 다시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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