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점심을 자주 거르던 걸 언니가 알아챈 건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였다. 그날은 퇴근이 늦어져 겨우 국 한 숟가락을 뜨던 때였다.
"점심은 먹었어?"
언니의 물음에 잠시 젓가락이 멈췄다. 대답 대신 물 한 모금으로 말을 삼켰다. 그날 이후 언니의 새벽이 달라졌다.
아침잠이 많던 언니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부엌 불을 켜는 모습은 낯설었다. 알람을 몇 번이고 끄던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가 새벽의 가장 차가운 시간에 일어나 밥을 짓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한 죄책감을 느꼈다. 부엌을 가득 채운 밥 냄새와 반찬 굽는 소리,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그 리듬이 새벽의 공기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따뜻한 냄비 뚜껑 위로 피어오르는 수증기처럼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날부터 나는 언니의 도시락을 들고 출근했다. 도시락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통 속에는 밥과 반찬뿐 아니라 언니의 시간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순간 퍼지는 밥 냄새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반찬들은 그날의 작은 위로였다. 잡곡밥 위로 반듯하게 놓인 달걀 장조림, 소시지볶음, 단무지와 조린 두부. 평범한 음식들이었지만 하나같이 정갈하고 따뜻했다.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멈춰 있다가 조심스레 한입을 떴다. 짠맛도 단맛도 아닌 그 중간쯤의 온도. 그 안에 언니의 손길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요즘 도시락을 싸 온다는 말을 자주 던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식비를 절약할 겸 도시락을 챙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언니의 도시락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면 그 따뜻함이 금세 식어버릴 것 같았다. 도시락을 먹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과 잠시 떨어진 곳에 있는 듯했다. 나는 매일 도시락을 남김없이 비웠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언니는 도시락 어땠는지, 내일은 뭐 싸줄지를 늘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식탁 위의 그릇들을 정리했다. 고맙다는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말 대신 깨끗하게 비운 도시락이 그 마음의 전부였다. 그런 나를 보며 언니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 웃음이 언니의 대답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니에게 도시락을 싸주고 싶다는 마음. 언니가 새벽마다 내 도시락을 만들며 느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 언니가 늦잠을 자는 틈을 타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잡곡밥을 할 자신이 없어 1+1행사 중인 현미밥을 사 들고 돌아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거리가 변변치 않았다. 썰어둔 김치와 달걀 몇 개, 남은 돼지고기 약간이 전부였다. 그래도 마음은 굳게 먹었다.
달걀을 풀어 계란말이를 시도했지만, 불 조절에 실패했다. 노릇해야 할 가장자리가 금세 검게 변했고, 안쪽은 덜 익어 흘러내렸다. 김치찌개는 간이 맞지 않아 밍밍했고, 채소는 제멋대로였다. 부엌은 전쟁터처럼 어질러졌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국자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고 언니가 나왔다. 잠결에 머리를 묶은 언니의 표정은 반쯤 잠이 덜 깬 듯했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나는 서둘러 식탁을 정리하고 그릇에 음식을 담았다.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맛없으면 먹지 마. 억지로 먹지 마.”
이 말만 연신 내뱉었다. 언니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한입을 떴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언니의 얼굴에 스치는 작은 미소, 그것이 전부였다. 맛이 없다는 걸 분명 알 텐데도 언니는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천천히 밥을 먹었다.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알았다. 도시락을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큰 정성과 사랑의 표현인지. 단순히 밥을 싸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의 피로와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끼니를 챙기는 일, 그 속에는 수많은 마음의 결이 숨어 있었다. 언니가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 밥을 짓던 그 시간의 무게가 비로소 느껴졌다. 언니는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도시락 속 밥 한 숟가락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을 뿐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언니에게 근처 백화점으로 마실 가자는 말을 꺼냈다. 예쁜 도시락통을 판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언니는 피식 웃더니 따라나섰다. 집을 나서며 언니에게 내 도시락통이 아닌 언니의 도시락통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으로 가는 길,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거리 위에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쳤다. 도시락은 어떤 색이 좋을지, 몇 칸짜리가 쓸모 있을지 이야기하며 웃었다. 언니는 너도 이젠 다 컸네. 라고 말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로도 언니는 매일 도시락을 싼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밥을 짓는다. 밥이 뜸 들 때쯤이면 부엌 가득 퍼지는 냄새가 나를 깨운다.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언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도시락은 결국 마음의 형태라는 걸.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밥 한 숟가락, 반찬 하나로 대신하는 일이라는 것을.
도시락을 싸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언니는 뚜껑을 닫기 전 항상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확인하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밥 위에 올려둔 작은 김 조각이 삐뚤지 않았는지, 반찬의 색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지. 그 세심한 순간이 마음을 남기는 일이라고 믿게 된다고.
언니의 도시락에서 시작된 사랑이 이제는 내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랑이란 식지 않는 밥처럼 따뜻해야 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하루를 견디게 하는 온도. 언니의 도시락은 내게 그 온도를 알려준 첫 번째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