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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둠으로써 글을 쓴다는 것

첫 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by 율성휘

나는 그만뒀다. 첫 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위를. 글을 쓰는 사람에게 첫 줄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그 한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두려움 속에서, 나는 수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첫 문장이 가진 힘은 분명 존재한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그 문장은 독자와 작가 사이에 놓인 첫 번째 다리다. 그 다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독자는 건너오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 책들도, 작가들의 조언도,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첫 문장에 온 힘을 쏟으라고. 그것이 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나도 그 말을 따랐다. 작가도 아닌 주제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가끔 하늘이 선물처럼 좋은 문장을 떠올려주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기뻐하며 첫 줄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늘 첫 줄에 비해 초라했다. 빛나는 입구 뒤에 어두운 방들만 이어지는 집처럼, 독자는 들어왔다가 금방 돌아서 나갔다. 완벽한 첫 문장을 위해 쏟은 시간만큼, 나머지 글들은 힘을 잃어갔다.


글쓰기는 나에게 나를 알아가는 도구였다. 많은 방법이 있었지만, 글쓰기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솔직한 길이었다. 혼자 앉아 종이 위에 생각을 풀어놓는 일, 그것만으로도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오타투성이에 문장은 어색했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들도 많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 서툰 행위 속에서 위안을 얻었고, 몇몇 사람들은 진심을 알아봐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생각,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 완벽한 첫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 창작의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이렇게 아파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작가의 길이라고 믿었다.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완성된 글은 몇 편 되지 않았다. 대신 휴지통에는 시작만 하고 버려진 글들이 가득했다. 완벽한 첫 문장을 찾지 못해 중간에 포기한 글들. 첫 줄은 좋았지만, 그 뒤를 이어가지 못해 지워버린 글들. 그 글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글쓰기는 완벽한 시작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일이라는 것을. 첫 문장이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수많은 문장이 진실하게 흘러가는가였다. 독자는 화려한 입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러 오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완벽을 향해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다. 완벽을 쫓으면 영원히 시작만 할 뿐 끝을 볼 수 없다. 완성을 향하면 부족하더라도 하나의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 나는 완벽을 버리고 완성을 택하기로 했다.


첫 문장에 대한 집착을 그만두자 비로소 글이 흘러갔다. 서두는 평범해도 중간이 탄탄하고 끝이 단단한 글들이 나왔다. 독자들은 오히려 그런 글에 더 머물렀다. 화려한 첫 줄에 속아 들어온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끌려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만둠으로써 나는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었다. 완벽한 시작을 만들려는 욕심을 그만두고, 솔직한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첫 줄에서 멈춰 서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끝맺음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붙잡고 가는 것이 진짜 글쓰기라는 것을. 완벽한 첫 문장 대신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글쓰기의 답이다.


휴지통에 묻혔던 글들이 이제는 억울하지 않다. 그들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쓰다가 버리는 것보다, 끝까지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첫 문장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 문장을 쓸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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