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오랜 연서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일기는 연서를 닮아 있었다.

by 율성휘

오늘은 반드시 일기장을 사야겠다는 마음으로 연신 쇼핑 사이트를 뒤적였다. 일기장을 다 쓴 지는 두 달이 조금 넘었지만, 휴대전화 앱으로도 충분히 일기를 쓸 수 있어서 하루이틀 미루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공책에 관해서는 예쁜 것보다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지만, 일기장을 구매할 때는 조금 더 깐깐하게 보는 편이다. 일기장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 그래야 쓰는 맛이 있다. 커버의 경우, 무조건 하드커버로 되어 있는 것을 구매한다. 내지도 깔끔하면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색하지 않는 재질을 선호하다 보니 일기장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쇼핑몰 사이트를 헤매다 지쳐 침대 위에서 신음과 한숨 사이의 모호한 소리를 흘리며 뒹굴고 있었다.


오전 내내 핸드폰을 붙잡고 사는 내 모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언니가 노크도 없이 방에 들어왔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방을 치워놔라. 그녀의 말 한마디에 등골이 오싹해진 나는 서둘러 침대를 벗어났다. 이 집에서 서열 0위에 해당하는 그녀의 말은 곧 법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끈을 집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질끈 묶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비염이 생긴 이후부터 청소하게 되면 반드시 입과 코를 막아야 했다.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방을 치울 계획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책상이었다.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매일 밤 11시,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쓰면서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다른 공간들은 더럽더라도 이곳은 언제나 깨끗했다. 나의 유일한 청정 지역이 관리 소홀로 오염된 것만 같아 마음이 씁쓸해졌다. 쓰레기봉투에 과자 포장지를 버리고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한 후, 책상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음료 자국을 닦았다. 깔끔해진 책상을 보니 일기장을 펼쳐 연필로 종이를 연신 간질이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다.


청소를 마친 후 평범하게 일상을 이어갔다. 말끔해진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졸음이 찾아오면 기꺼이 껴안고 눈을 감았다. 꿈과 책 속 문장 사이에 허우적거리다 보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와 조카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면 침대에 일어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간다. 조카가 어린이집에 돌아오면 어서 와, 하는 말과 함께 안아준다. 이때가 아니면 두 번 다시는 하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 조카를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춘다.


놀이방으로 가서 졸린 눈을 비비고 조카와 함께 놀았다. 나의 무릎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정수리에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사랑을 표현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정신없이 아이와 놀아주고 나면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된다. 평범하고도 소박한 밥상 앞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 뒤로 조카가 잠이 들면 어른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오늘은 새벽까지 넷플릭스를 보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언니와 형부에게 인사를 건넨 후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 굴러다니는 공책을 집어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켜 두 달간 앱의 기록된 일기를 다시 보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나른하고 귀찮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모바일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다. 구색만 갖춘 문장들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안 되는 좋은 문장은 공책에 옮겨 적고, 앱에 저장된 일기는 모두 지웠다. 새로운 일기장이 오면 그때의 추억을 더듬어 다시 고쳐 쓰리라 다짐했다. 30분 만에 끝난 결과물을 바라보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하는 일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두 달간의 앱 일기를 지운 후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문득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나는 하루가 끝나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썼다. 단순히 오늘의 일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문장들을 조심스럽게 골라 적어나갔다. 그때의 일기는 누군가에게 보내지지 못한 ‘연서(戀書)’와도 같았다. 미래의 나에게,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에게. 아니면, 그날의 나 자신에게.


책상 서랍을 열자, 오래된 일기장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손에 잡힌 것은 열다섯 살 봄에 쓴 붉은색 하드커버 노트였다. 노트를 펼치자 약간 바랜 잉크 냄새와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오늘도 잘 지냈니?’라는 첫 문장은 마치 오래된 연인이 건네는 안부처럼 다정했다. 당시의 나는 일기를 쓸 때마다 상대를 정해놓고 대화를 하듯 썼다. 그 상대가 꼭 실존 인물일 필요는 없었다. 가끔은 먼 미래에 나였고, 가끔은 짝사랑하던 친구였으며, 또 어떤 날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그런 식으로 쓴 일기는 나에게는 가장 솔직한 ‘연서’였다. 부끄러움도 눈치도 미사여구도 없이 마음의 진심이 스며 있었다.


스무 살이 지나고 사회에 나와 바쁘게 살면서부터 그 연서들을 멀리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대충 끼적이는 문장들 사이엔 진심이 스며들 틈이 없었다. 화면에 떠 있는 커서가 나를 응시할 때마다 마치 마음을 털어놓을 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기록’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 ‘쓴다’라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책상 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낡은 일기장을 다시 꺼내든 이 순간, 나는 오래전 나에게서 편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일기장을 고르는 일은 어쩌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다시금 ‘연서를 쓸 준비’를 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음을 담아 진심을 건네는 행위. 그것은 꼭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다시 이 노트를 펼쳐볼 나 혹은 지금은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에게 닿을지도 모를 이야기들. 나는 카카오 브런치 사이트에 접속해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첫 문장에 이렇게 적었다.


“다시, 너에게.”


그 문장을 적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또렷하게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일기장은 나에게 단순한 기록의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연서였다. 오늘 밤 11시에는 다시 그 오래된 연서를 써 내려가기로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