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매일 밤 11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오른쪽 구석에 자리 잡은 일기장과 펜을 집어 들고, 오늘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천천히 되짚는다. 낮 동안 켜켜이 쌓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일의 찌꺼기, 대화의 미세한 가시,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삼킨 표정들. 첫 줄에 날짜를 적고, 마음을 짓누르던 짐을 먼저 내려놓는다. 이렇게 나를 정리하는 시간은 어느새 18년째 이어져 왔다. 무슨 일을 하든 작심삼일에 그치는 나에게 드물게 오래된 소중한 습관이다.
이 습관이 취미가 된 건, 일기가 ‘숙제’라는 이름표를 떼던 순간부터다.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이면 어김없이 주어지던 일기 쓰기 과제는 ‘써야만 하는 것’이었다. 며칠 치를 몰아 쓰고 형식적인 문장으로 하루를 채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억지스러운 기록이 조금씩 달라졌다.
14살이 되어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되면서, 더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일기를 검사하지 않았다. 누가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낯선 해방감을 주었다. 마치 비밀 친구가 생긴 듯했다. 꾸밈없는 마음이 종이 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숙제였던 일기는 점차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갔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기록이 시작된 것이다.
어릴 때는 감정이 가는 대로 펜을 휘둘렀다. 친구와 싸운 이야기, 짝사랑의 설렘, 공부가 싫다는 투정. 생생하고 날 것 같은 문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루를 격한 감정으로만 마무리하다 보니 어쩐지 허전했다. 감정에 묻혀 그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고군분투하며 보낸 하루였는데도.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까지 함께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하루가 비로소 내 것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점부터 일기는 방향을 틀었다. 감정과 일상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면서 나만의 기록이 시작됐다.
일기를 쓰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간결함과 담백함이다. 있는 그대로를 적으려 애쓴다. 쓰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담담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솔직하게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자극적으로 과장되거나 본질을 흐리는 변명이 길어질수록 본래의 궤도를 이탈하곤 했다. 다시 읽다 보면 미움과 원망이 묻은 문장이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만 골라 적는다.
둘째,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잘한 척도, 못한 척도 하지 않는다. 기쁨은 기쁨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쓴다. 그렇게 쓰다 보면 실패는 과정의 이름이 되고, 기쁨은 과장되지 않은 채 오래 남는다.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슬픔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과열된 감정을 글자로 적으면 온도가 내려가고, 무심히 지나쳤던 친절 하나는 한 줄로 남아 내 안에서 자란다. 이런 기록을 나는 참 사랑한다.
셋째, 꾸준하되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꾸준함에 얽매이기보다는, 때로는 멈추는 유연함을 가지려 노력한다. 바쁜 날에는 일기를 쓰지 못할 때도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순간들이 더 많아진다. 몸과 마음이 고단한 순간에 억지로 펜을 드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럴 때는 빈 페이지를 그대로 둔다. 공백 또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더는 빈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일기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꾸준함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종종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정해진 형식은 없다. 예전에는 날짜, 날씨, 시간을 적고 본문을 썼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블로그에서 본 팁을 참고하기도 한다. 오늘의 한 줄 평가, 별점, 날씨 아이콘, 누군가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등 작고 가벼운 변화를 추가하면 기록이 지치지 않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를 즐기면 오래 쓸 힘이 생긴다. 오래 가는 일은 결국 재미를 키우고, 재미는 다시 다정을 불러온다. 다정해진다는 건, 내 하루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는 의지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일기를 18년 동안 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밤 11시는 오직 내가 나에게 다정해지는 시간이다. 나를 원망하지도, 꾸짖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오늘의 대화에서 하지 못한 말, 마음속에 오래 머물던 문장과 단어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 순간 나는 조금 용감해진다. 미뤄 둔 사과를 내일의 할 일로 적고, 두려워 피했던 도전을 다음 주 첫 줄에 표시한다. 기록은 계획을 낳고, 계획은 다시 기록으로 돌아온다. 그 왕복이 내 삶을 조금씩 밀어 올린다.
마지막엔 반드시 나를 위로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해냈다’보다 ‘버텼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날들 사이에서, 일기는 포근한 품이 되어준다. 잘한 날에는 박수를, 힘든 날에는 조용히 어깨를 토닥이는 따뜻한 문장을 남긴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은 거짓 없는 응원이다. ‘괜찮다’ 한마디에 많은 것이 녹아내리고 오늘의 끝을 덜 무섭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묘한 믿음이 자란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나아질 거라는, 근거 있는 믿음.
그래서 나는 오늘도 11시에 앉는다. 한 줄을 쓰고, 한숨을 놓고, 한 사람을 위로하고 응원한다. 그 한 사람은 언제나 나다.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긴다.
“매일 밤, 11시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