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서 이해는 못했는데 감동은 했다.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을 읽게 된 계기는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이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재밌다는 다른 사람의 평과는 달리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생각보다 낯설고 묘한 문장들이 이어졌다. 뜻을 알 듯 말 듯한 단어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읽을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눈은 점점 피로해졌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난해함 속에 무언가 진심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했다. 이해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했다. 마치 낯선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 같았다. 의미는 몰라도 리듬과 온도가 전해지는 그런 순간, 그게 바로 이 책을 읽는 경험이었다.
딜런은 에세이를 완성된 형식이 아니라 시도의 과정으로 본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와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을 때 오래 눌러왔던 어떤 감정이 스르르 풀렸다. 그동안 나는 글을 쓰며 너무 자주 멈추었다. 단어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지웠다. 그 과정에서 글은 점점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그런데 딜런은 그 모든 망설임조차 하나의 글쓰기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게 작은 구원의 문장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기를 쓰는 방식을 바꾸었다. 이전에는 하루를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날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면 그대로 남긴다.
<감정 : 불안> <피자 : 맛있음> <인생 : 열라 모르겠음>
과거의 나였다면 절대 이렇게 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이렇게 적어두고 펜을 덮으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리스트처럼 흘러가는 문장이 내 하루의 형태를 대신한다. 딜런이 말한 목록의 미학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문장들에는 우울의 그림자가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불안과 싸워왔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구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 고백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우울을 글로 다루는 일은 단순한 고백을 넘어 존재를 복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마음이 복잡할 때 일기를 쓴다. 감정의 이름을 적어두면 조금은 덜 막막해진다. 슬픔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늘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에세이즘》은 나에게 글쓰기의 기술이 아니라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대신 꾸준히 써야 한다는 마음을 남겼다. 나는 여전히 모든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위안을 느낀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모르는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밤 일기를 쓰며 나의 작고 불완전한 세계를 기록한다. 하루의 끝에 마음 한쪽을 비워두고 펜을 들어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다. 불완전한 문장 속에서도 진심은 남는다. 그 진심이 쌓여 나를 움직인다. 이해가 닿지 않아도 공감은 자란다. 그것이 내가 《에세이즘》을 읽으며 배운 가장 확실한 진리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때로는 우울하지만 그 속에서 문장을 찾는 법을 배웠다. 글을 쓰는 행위는 이제 나에게 희망의 습관이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글. 조금 흔들려도 살아 있는 글.
그것이 내가 믿는 나만의 작은 에세이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