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의 신이 베푼 로또 당첨금 5천 원
이번 주, 유난히 자주 떠올린 단어가 있었다.
수중에.
내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 없는지를 또박또박 알려주는 단어. 장바구니에서 물건을 뺄 때마다 나는 그 단어를 씹듯 마음속에서 굴렸다. 휴대폰비, 식비, 카드값, 보험료. 필요한 것들은 도무지 줄지 않았고, 지금 갖고 있는 돈보다 더 큰 금액을 지출해야 하는 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계산기를 켰다. 하지만 숫자는 입력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 어떤 합리도, 계획도, 이번 달을 증발시키는 지출들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결국 나는 통장을 열었다. 0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난 적 없는 통장 잔고에 새로고침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달라질 것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런 모습이 슬프다가도 웃겼다. 나는 내 감정을 어디에 둘지 몰라 잠시 멈춰 섰다. 절망과 유머 사이에서 헛웃음이 천천히 올라왔다.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할 미래를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난이라는 말은 조용히 스며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선택의 폭을 줄였고, 어떤 날에는 마음의 표정을 흐리게 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을 무렵, 언니와 나는 엉뚱한 결정을 내렸다. 궁핍한 주제에 로또를 시작한 것이다. 각자 만 원.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종이에 적힌 번호들은 기묘하게도 미래를 접어서 들고 있는 기분을 주었다. 언니는 휴대전화 계산기를 켜더니 숫자를 세었다.
“2와 8. 이번 달에 유난히 자주 보이지 않았어? 이건 신호야.”
근거 없는 확신이었지만,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난은 종종 상상을 믿게 했다. 로또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갑자기 두 손을 모았다. 기도였다.
“언니 뭐 해?”
“조용히 해. 지금 중요한 협상 중이야.”
언니는 하늘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이든, 예수님이든, 부처든, 뭐든! 돈 많은 신도가 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저희에게 1등을 주십시오. 헌금은… 천천히 하겠습니다!”
거의 협박에 가까운 기도였다. 나는 길 한복판에서 웃음이 터져 숨을 들이쉬기도 어려웠다.
“언니, 신이 우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면 어떡해.”
“괜찮아. 가난은 이미 우리를 올려놨을 거야.”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가난 앞에서 우리가 쥐고 있던 몇 안 되는 생존 방식, 그것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웃기. 웃어버리기.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다. 추첨 날. 결과는 단순했다. 각자 만 원 투자해서 오천 원이 당첨됐다. 정확히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야, 우리 투자수익률 50%면 대단한 거 아니야?”
“재테크 재능 있다니까. 방향만 잘 잡으면 우리도 세계로 나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바로 그래서 우리는 다시 웃었다.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정말 잃지 않은 무언가라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 밥상에서도 언니는 하늘을 보며 선언했다.
“듣고 계시죠? 다음 주엔 진짜 크게 갑니다.”
나는 김 한 장을 찢으며 말했다.
“헌금은 천천히 한다며.”
“계획은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
다시 웃음이 났다. 밥, 국, 김 한 장, 그리고 웃음. 가난이 많은 문을 닫아도, 끝내 닿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 있게 마련이었다. 밤이 되었다. 나는 다시 통장을 열었다. 숫자는 여전히 0. 하지만, 오늘의 웃음이 내일을 버티게 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수중에 없는 것들이 많지만, 모든 빈칸이 곧 결핍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밤이 되었다. 나는 다시 통장을 열었다. 숫자는 여전히 0. 하지만, 오늘의 웃음이 내일을 버티게 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수중에 없는 것들이 많지만, 모든 빈칸이 곧 결핍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난은 체온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어쩐지 웃음은 제 길을 찾아 돌아오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적어두었다. 통장이 0원이었지만, 웃음만큼은 마이너스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삶은 아직 버틸 만했다. 이 웃음이야말로 통장 잔고가 결코 앗아가지 못할, 수중에 든 우리의 '진짜 자산'이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아주 작은 기도로 덧붙였다.
신이시여, 다음 주에는 1등 당첨금이 아닌
이 소중한 웃음이 0원이 되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