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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Feb 03. 2023

생존염색 과 헤어질결심

염색. 누구에겐 생존이고 어떤 이에겐 멋이다. 멋이 아닌 생존인 근로자는 대부분 흰머리를 감춰야 한다. 흰머리로 일하기엔 사회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근로자로 일할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해야 했다.


한달이면 약 1cm가 자라는데 조금만 시간을 놓쳐도 지저분한 염색머리를 들킨다. 더구나 반복되는 염색에 머리숱은 가늘고 빠지고 두피도 빨갛게 되었다. 옻독이 올라 염색을 못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까 싶지만 염색은 하고 싶지 않은 출근 카드 같은 타이머였다.


그런 내가 6개월동안 염색을 안 했다. 더 이상 생존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인데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이는 더이상 속일수 없다는 가볍지 않은 현실과 마주했다. 설에 올 때는 염색하고 와라. 영상 통화하던 엄마가 하얗게 된 내 머리를 보더니 그렇게 말씀하셨다. 엄마한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흰머리가 들통나버렸다.


통화를 끊고 나자 고민이 되었다. 더 이상 염색할 이유를 찾지 못해 안 한 것뿐인데 명절연휴 때문에 염색을 해야 하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 염색약은 사다 놨지만 할까 말까 망설였다. 염색 하는 이유는 젊어 보이거나, 타인의 시선 때문인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으니, 여러모로 안 좋은 염색을 굳이 해야 하나 싶었다.



나는 젊어보이고 싶지도 않고,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일 정도의 일을 하지 않는다. 젊어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뿐, 젊음 그 자체는 아니듯 염색으로 늙음을 포장한다고 어려지는 것도 아닌데 흰머리 염색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루종일 집안에 있으니 굳이 염색할 이유를 찾지 못해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흰머리밭이 되었는데 이참에 '이젠 염색을 하지 말아야지'로 굳혀졌던 것이다. 염색을 안 하는 것도 안 하려는 결심도 모두 자연스럽게 생긴 마음인데 타인에 의해 위기가 올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염색을 하는 것보다 안하는 것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명절 시골에 가야할 일이 생길 때는 고민이다. 시골에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겐 흰머리로 이미지가 굳혀지기 때문에 신경이 안 쓰인다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며칠 때문에 염색을 하는 것이 싫었다. 퀘퀘한 염색약 냄새도 싫었고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매달 염색을 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독한 염색약으로 노화를 감추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결국 나는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모자를 쓰고 시골집에 갔다. 집안에서는 모자를 벗고 집밖에서는 모자를 쓰는 걸로 계획했다. 모자도 세 개를 준비했다. 며칠동안 똑같은 모자만 쓰는 것보단 효과적일 거 같아 나름 머리를 썼다. 그런데 모자를 벗은 내 모습을 봤음에도 엄마는 별반응이 없었다.


흰머리를 못 본 건지 안 본 건지 알 수 없으나 가족 중 아무도 내 흰머리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이 아닌 친척들 방문 때에는 모자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모자쓸 시간을 놓쳤다. 다행인지 아무도 내 흰머리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아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이종 사촌 동생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한마디 했다. "언니! 염색해. 염색 안 하면 어떡해, 그 나이에."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촌 하나가 거들었다. "염색해야 돼. 나도 염색한 머리지만 해야 돼." "언니, 육십이면 안 해도 돼. 하지만 언니 나이엔 해야 돼"라며 엄마도 안하는 잔소리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역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 속마음을 알아준걸까. 아니면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신걸까. 이유야 어쨌든 엄마의 침묵이 고마웠다.


사실 나는 엄마가 가장 신경 쓰였다. 시집 안 간 노처녀 딸 머리가 하얗더라 하는 말이 흘러다닐까 염려해 당부하셨던 터라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바쁘신 건지 잊은 건지 알 수 없으나 연휴 내내 내 흰머리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안하셨다. 원래 잔소리가 없는 분이긴 하지만, 집에 올 때 염색하라는 말씀을 굳이 하신 거 보면 흰머리가 보기 싫었던 것일텐데 아무 말씀 안 하신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자유를 구속할 필요 없다'는 자유의지라는 예상했던 답이 돌아올까 관두기로 했다. 엄마는 '자유를 구속할 필욘 없지'라는 말씀을 잘하신다. 또 괜히 얘기를 꺼내 속상함을 상기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떤 일은 그냥 묻어둔 채로 모르는 채로 넘어가야 편할 때가 있다.


염색을 안 해도 되는 이유가 늘었다


이번 명절 일하느라, 조카와 제부만 보내고 오지 못한 동생은 누구에게 들은건지 전화 해서 첫 마디가 "언니 염색 안 하기로 했어?"라고 묻는다. "응, 이제 안 할려고"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응, 언니 안 해도 돼 염색 같은 거. 요즘은 염색 안 하는 사람들 많아" 그런다.


원래 내 외모에 잔소리를 잘하던 동생이었는데 염색만큼은 공감해 주며 이해해 주었다. 대신, 화장을 해야 흰머리가 깔끔해 보인다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화장이라 봐야 고작 BB크림 바르는 정도니 제대로 된 화장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 BB도 어쩌다 한 번, 직장생활 때도 한 적 없는 화장을 흰머리를 위해 할 수는 없다. 화장이나 염색은 내게 다 부자연스러운 것들이다. 그럼에도 외모에 까다로운 동생의 지지에 마음은 한결 편했다.


염색을 안 했더니 확실히 나이 들어 보였나 보다. 택시기사가 나를 육십으로 봤다. 이유를 물었더니 흰머리 때문이라고 했다. 육십이 맞냐고 재차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육십이면 어떻고 오십이면 어떤가. 상관없다. 한참을 달리던 기사가 자꾸 힐끔거려 보더니 이상하다고 한다. 머리를 보면 육십인데 피부를 보면 젊어보여서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마스크 사이로 피부가 보인단 말인가. 장난기가 발동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졌다.


"그래서 염색을 해야 하나 봐요, 10년은 젊어보이게" 그랬더니, 염색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중후한 멋이 있으니 나이들면 드는대로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한다. 노화를 거스를 필요 없이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며,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저기 저 계절따라 나무가 변하듯 사람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말씀이 너그러운 기사 덕분에 염색 반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생존이 아니더라도, 흰머리 염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외출시 모자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정관념이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을 만나건 자신감은 내가 갖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도 나의 흰머리에 왈가왈부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더구나 염색의 불편함을 안다면 내게 염색을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없이 이젠 더 이상 염색을 안 하기로 했다. 굳건하게 자리잡은 나의 흰머리를 사랑하며 자연스럽게 노화를 받아들일 것이다. 가을이 단풍을 빨갛게 한 것처럼 가을에 접어든 내인생 세월에 예쁘게 물든 흰머리를 더 이상 염색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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