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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ul 16. 2020

소음 ​

이해하고 삽시다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소음이 “문제” 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드릴 박는 소리, 쿵쿵대는 소리, 바닥 긁는 소리, 그 정도야 어쩌다 잠깐이고 낮이니까 봐줄 만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렸다. 물 내리는 소리. 휴대폰 진동 소리. 심지어 코 고는 소리까지 들렸다. 옆집인지 위집인지 분간도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아파트는 모든 구조가 똑같다.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 위치에 위층도 아래층도 옆집도 와우 전세대 모든 가구가 다 똑같다는 건데 소름)  신경이 많이 쓰일 때는 베란다 소방용 문 앞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미세하게 들리는 소리라 예민한 내가 문제인 거 같아 그 정도 생활 소음은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밤 12시만 되면 세탁기 물 흐르는 소리가 쪼르륵 쪼르륵 들려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2시만 되면 배관을 타고 내려오는 그 소리가 들렸다.

쪼르륵 쪼르륵....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몰라 지나가는 경비 아저씨한테 얘길 했더니  

   

:그 정도는 이해하고 삽시다. 그 사람은 밤 12시에 퇴근하고 오는 사람인가 보죠.

 그때밖에 빨래할 시간이 없어서 그럴 거예요 :   

 

내가 예상한 대답은 그게 아니었는데 오히려 말한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밤 12시만 되면 계속 들려오는 쪼르륵 소리에 방법을 찾던 중 나는 각 층 현관문 앞에 작은 메모지를 붙이기로 했다. 4층부터 15층까지 계단을 올라가 한집 한집 남이 볼까 재빨리 부치고 내려왔다.  혹시 몰라 엘리베이터에도 붙여놨다. 엘리베이터에는 큼지막하게 A4용지를 사용했다.   

  

밤 12시에 세탁기 돌리시는 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침 출근할 때 부쳐놨는데 퇴근할 때 보니 다 제거되고 없었다. 불법 게시물이라 제거된 건지 알 수 없었다.

필사의 노력을 했던 그날도 어김없이 세탁기 물소리가 들려왔다.


쪼르륵 쪼르륵... 시계를 보니 정확히 12시였다....    


정녕 방법이 없는 건가. 노이로제가 걸릴 판이었다.


친구한테 얘길 했더니 그런 건 직접 부딪히지 말고 관리소에 연락하라는 말을 했다.  

아아... 나는 왜 관리소를 생각 못했을까.... 그래 아파트에는 관리소라는 것이 있었지.    

바로 관리소에 전화했더니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후한 목소리에 주눅이 들었지만, 곧바로- 밤 12시마다 세탁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송해주면 안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런 걸로는 방송이 안되고 – 대신, 세탁기 물소리가 들릴 때 바로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밤에요? 밤에 전화를 하라고요? 재차 물었더니 그러라고 했다. 그래야 누가 돌리지는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답변이었지만 나름 희망찬 답변을 들은 그날 밤 나는 세탁기 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눈감고 숨죽인 체 기다렸다.


애석하게도? 그날은 안 들렸다. 그 이튿날도 들리지 않았다.

며칠째 소식이 없던 어느 날 쪼르륵 쪼르륵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밤 12시였다.

옳다구나,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저장해둔 관리소로 전화를 걸었다.     

잠이 덜 깬 걸쭉한 늙은 남자 목소리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몇 동 몇 호냐고 물었다.

신상 밝히기가 꺼림칙해서 머뭇거렸더니, 그래야 그 호수 위로 알아본다는 설득력 있는 말에

***호라고 답했다. 알았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지금 우리가 밖에서 보고 있는데 위층으로 아무도 불 켜진 집이 없어요.


그 말에 베란다로 나가 밖에서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커튼을 조금 젖혀 밖을 보니

우리 층 라인 위를 쳐다보고 있는 경비 두 명이 보였다. 와 이렇게 확인하는 거였어- 난 뭐 특별한 방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산 박한 방법이 아니어서 한숨이 나왔지만


불을 끄고 세탁기를 돌릴 수도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렇다고 지금 이 시간에 층마다 문을 두드릴 수도 없으니 우리 집에 와서 정말 세탁기 물소리가 맞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아 아니요 안 오셔도 돼요. 하며 재빨리 끊었는데

얼마 후 초인종 벨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 울리는 벨소리는 무서웠다.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벨소리라 더 무서웠다. 아무래도 그분들일 거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살금살금 걸어가 조심스럽게 “ 누구세요 ”라고 경계하듯  물었다.    


“ 세탁기 물소리 확인하러 왔습니다 ”  “괜찮으니까 확인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그랬더니 굳이 확인을 해야 한다고 우기신다... 아니오.. 아니오 괜찮아요...

닫힌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반복적인 릴레이가 오고 갔다.

민원이 들어온 거라 보고를 위해  확인을 해야 한다고, 이 늦은 밤에 문 밖에 버티고 서 있었다.   경비를 무서워한다는 게 모순이긴 했지만 빨리 이 상황을 끝내야 할거 같아 “괜히 고생하셨습니다. 괜찮으니까 그만 가보셔도 돼요.

다음부턴 세탁기 물소리로 전화하지 않을게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결해줄 것처럼 기대를 걸었던 내가 바보였다. 세탁기 소음보다 더 큰 공포를 경험한 뒤 세탁기 물소리는 흘러버리기로 했다. 친구 말처럼 신경을 쓰지 마! 들리면 들리는가 보다 해.... 그게 잘 안되니?       


잘 안됐다 소음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귀마개도 해보고 스스로 체면을 걸어도 봤지만 힘든 밤을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


한동안 곤두서 있던  세탁기 물소리는  어느 순간 저절로 잠잠해졌다.

이사를 갔는지 근무시간이 변경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잠잠하다.     


그런데, 언제부터가 방 안에서 상한 소리가 들린다.

불을 끄면 들리는 들리는 이상한 소리. 바스락바스락. 꼭 불을 꺼야만 들린다. 바스락바스락

소리의 정체.... 를 찾기 위해  불을 껐다 켰다  원인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아직 못 찾았다. 공포영화 되는 게 싫어 무심해지기로 했다.

     

덧, 세탁기 물소리론 방송 안된다던 관리실에서 요즘은 별별 방송을 다 한다.


***동 누구 어린이는 엄마가 찾고 있으니 얼른 집으로 귀가하라.  

***에서 안경 잃어버린 사람 빨리 찾아가시오.

스마트폰을 주웠으니 관리소에 와서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소음이 선율이 되는 그날이 오긴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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