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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ul 15. 2020

삶에 대한 예의

 약 속

놀러들와.

아, 네 그럼요 놀러 올게요. 놀러 오고 말고요. 어르신 보러 꼭 다시 올게요

모두들 그렇게 다음을 약속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시 오는 사람은 없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남들 다하는 다시 놀러 올게요 라는 인사말을 선뜻 꺼내지 못했다.

다른 동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그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건

약속을 하는 건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후에 필요할까 싶어 다니기 시작했던 간호학원. 실습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동료들과 달리 개인병원에서 홀로 실습을 했다. 그러다가 의무 병동 실습 기간을 채우기 위해 요양 병원에 합류한 것인데 그곳에 도착한 첫날부터 패닉 상태가 되었다.  


이제 정말 포기할 때가 됐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정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병원 간호사들도 실습 동료들도 자기 일만 묵묵히 할 뿐 전혀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혼자 긴 하루를 보내고 고심한 끝에 학원에 전화해 더 이상 실습을 못할 거 같다고 얘기했더니 학원에서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딱히 이유를 대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습을 이어갔다.

사실 일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이 힘든 것도 아니었다.

 다만, 병원 특유의 냄새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을 보는 게 힘들었다.

하루하루 출근하면, 오늘을 볼 수 없었던 노인들의 마지막인 어제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라고 늘 말하는 어느 노인의 말이 떠나질 않는 것도 이유다.    


그날도 최소한의 기본 실습만 마친 체 고개를 푹 숙이고 휴게실에 앉아있는데

“ 뭐가 그렇게 힘들어? ” 묻는 소리에 고개 들어 보니 애숙 환자였다. 당뇨병 환자임에도 커피를 마시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안쓰럽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환자가 실습생을 안쓰럽게 본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환자들 앞에서, 그것도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 앞에서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내 힘듬은 힘듬도 아닐 텐데. 참으로 예의가 없는 나였다.

애 숙환자가 건네는 위로의 별사탕 두 개를 받아 들고 눈물이 나올뻔한걸 꾹 참았다.  

    

이후 나는 모든 실습에 조금 더 성실하게 임했다. 혈압체크도 맥박수도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밥을 떠 먹여 주는 일도 어색하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내가 밥 당번한 환자는 밤마다 울면서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춘숙할매다. 춘숙할매는 밥 한 숟가락씩 떠억 먹을 때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고추장을 달라는 소린지 물을 달라는 뜻인지 분별할 정도가 되었다. 춘숙할매의 식사도우미를 자청한 후로는 자리를 잡아가듯  모든 것이  한결 가볍고 수월해졌다.


어떨 때는 소녀시대가 되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나를 볼 때마다 노래해봐, 춤춰봐 하는 노인들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춤과 노래를 따라 하며 온갖 애교를 떨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나는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볼 수 없는 막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꿍쳐둔 과자와 떡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 먹으면 서운해하셔서 강제로 먹기도 했다. 몰래 살짝 나만 불러 100원을 주는 환자도 있었다. 100원은 귀중한 커피값인데 특별히 내게 선심을 쓴 것이다.


그러던 한날 옴이 발생했고 아무도 호실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들어가야 했지만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그때 아무 생각 없던 내가 간호사 한 명을 따라 들어갔고 간호사는 그런 내가 기특했는지 주사를 놔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했다. 얼떨결에 환자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는데 환자가 “ 악 ” 하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다들 놀래서 쳐다봤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환자가 그렇게 큰 고함을 치자 요양보호사가 다가와 “주사는 그렇게 놓는 것이 아니여” 라고 했다. 누구나 처음은 그렇게 시작한다고 응원해주는 환자도 있었다. 다행히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환자는 없었다. 주사를 아프게 놔서 너무 미안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나한테 아무런 항의도 못하는 그런 환자였다.  주사는 아무나 놓는 게 아니었다.   

    

못할 거 같던 실습의 꽃인 주사까지 놔보고

무사히 실습을 마치니 하나의 완결을 맺는 듯했다.



어쨌든 한생을 살다 마지막 종착지로 온  요양 병원 그곳에서도 삶은 있었고 희망은 있었다.

누군가 나를 데리려 오고, 누군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희망.

정들고 궁금했던 실습 마지막 날 동료들은 그렇게 희망찬 인사를 주고 있었다.

완전히 정신줄 놓은 치매 환자부터 정신 말짱한 불량 환자들까지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는데

정 씨 어르신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시 오는 사람은 없더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나는 차마 다시 오겠다는 빈말을 함부로 던질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형식적인 인사라는 걸 알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말을 잘하지 못한다. 설령 자연스럽게 인사해도 될 타이밍에도 약속이 담긴 말에는 신중히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정 씨의 그런 말에도 동료들은 다음에 다시 꼭 올게요 라는 말을 계속했다.

동료들은 정말 꼭 다시 올 것처럼 손까지 잡으며 살갑게 얘기했다. 그러자 정 씨의 표정은 밝아졌다. 올까 말까를 고민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해 나도 그만 “ 다음에 다시 한번 꼭 올게요”라고 인사를 해버렸다.  

 


정 씨는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년 퇴임 후 요양병원에 왔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아픈 곳도 없고 지금 당장 병원 밖을 나가서 살아도 될 만큼 정상으로 보였다. (왜 어떻게 오게 됐는지는 물을 수가 없었다. 현실에는 이유가 없다.) 게다가 정 씨는 매너도 좋고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어 여자 환자들 한테 인기가 많았다. 소문에 의하면 정 씨가 애 숙환자한테 밖에 나가서 살림을 차리자고 고백했는데 애숙 환자가 거절했다고 했다.

그 소문을 듣고 나는 애 숙환자한테 왜 거절했냐고 물어봤다. 애 숙환 자는 밥하고 빨래하는 게 귀찮아서 거절했다고 했다. 밥하고 빨래가 사랑을 가로막은 셈이었다.  

   

정 씨는 애 숙환 자를 시켜 마지막 날 실습생들 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꽃무늬 수가 예쁘게 놓인 흰 손수건과 박하사탕 한통이었다. 그 전날 애 숙환자에게 미리 들어 대충은 알았지만 정말 준비할 줄은 몰랐다. 포장지 대신 까만 봉지에 담긴 흰 손수건과 박하사탕.    

 

수많은 실습생들이 거쳐갔고 그럴 때마다 반복됐지만 한 번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던 막연한 기다림이었을 텐데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면서 우리들에게도 선물을 준비했겠지.

그런 생각에 그 선물을 받아 들고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12월도 5일밖에 남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바로 연말이었다. 연말을 넘기면 정말 다시 가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다리고 있을 정 씨를 생각하면 계속 마음이 쓰였다. 해를 넘기기 전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 약속했던 동료들에게 조심스레 병원에 안 갈 거냐고 물어보았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안 간다고 했다. 오히려 말을 꺼낸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뭘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어?라고 물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눈처럼 녹아버릴 약속들을 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약속은 약속이었다. 나는 시장에 가서 먹을걸 사들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을 정 씨를 생각하며, 애숙 환자의 환한 미소를 볼 생각에,

나를 반겨줄 외로운 환자들을 생각하며 양손 무겁게 들고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갔다.     


병원 안은 모든 게 낯설었다. 실습생들이 빠져나간 겨울 병원엔 싸늘한 정막 감이 흘렀다.

불과 1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을씨년스럽게 삭막했다. 호실을 기웃거렸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구는 요양원으로 갔고 누구는 죽음의 방 5층으로 이동했다는 소식만 들렸다. 가까스로 정 씨를 찾았다. 정 씨는 1달 전 건강했던 모습과 달리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를 알아본 건지 못 알아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하염없이 웃고만 있었다.

가져간 음식도 먹지 못할 만큼 기력이 쇠해 보였다.

하루하루 급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놓치고 있었다. 진작 와봤어야 했는지 모른다.

말없이 웃고만 있는 정 씨 옆에서 나 역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기만 했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기다리실 거 같아서 왔어요. 약속 지키려고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그냥 돌아서 나왔다.

마음이 이상했다.  동료들 말처럼 지나고 나면 그만이고 형식적으로 내뱉은 약속에 뭘 그렇게 까지 하냐고

하지만 나에게 약속은 삶에 대한 예의다. 예의가 불편할 지라도 지켜야 할 내 마음.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삶에 대한 예의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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