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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Feb 28. 2023

 우리도 북콘을 열수 있을까

길잃은 글쓰기 방향을 찾다

길을 잃었다. 분명 이틀 전에 왔던 곳인데. 갑자기 낯선 곳처럼 느껴졌다.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마음은 초조했다. 막막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높은 고층 아파트에 꽉 막혔다. 벗어나면 더 멀어질까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의 옆 단지인데 임대아파트와 민간아파트가 뒤섞인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잃었다. 다른 생각을 하다 길을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 방향을 완전히 잃었다. 그곳이 그곳 같았다.   


그곳이 그곳 같은 산에서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 고사리 꺾으러 갔다가. 산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그 공포와 두려움을. 내려가면 절벽이고, 방향성 없이 올라가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갇힌 거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식은땀이 흐르고 공포가 극에 달할 때즈음엔 창피해도 어쩔 수 없다. 같이 간 친구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른다. 길을 잃게 되면 보내는 수신호다.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소리치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이 온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움직여야 하지만 초보자에겐 그마저도 어렵다. 넓은 산속에서 울러 퍼지는 소리의 방향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리에 익숙한 친구가 용케 나를 찾아서 살아났던 기억이다. 어디서든 길을 잃는다는 건 숨이 턱 막히는 초조함이다.      


북콘서트 시작까지 5분도 안 남았다. 처음 열리는 북콘서트고 첫회 주인공인 지인. 관객이 많이 올까 초조하고 걱정된다고 했었다. 늦어선 안된다. 물어볼 사람은 없고 바람만 세차게 지나간다. 사거리에서 방황하는데 서행하던 자가용 한 대가 차창을 내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북콘서트 가냐고 물었다. 서로 목적지가 같았다. 초면이지만 우린 서로 북콘서트가 열리는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동지가 생기자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작은 도서관을 찾기 위해 사명감처럼 움직였다. 장소는 헤매던 바로 그 옆이었다. 작은 도서관 대신 커뮤니티센터라는 공식명칭을 달고 있는 곳.        


작은 도서관에 30명 남짓 사람들이 모였고 실시간 유튜브 방송도 한다. 대학교수도 인사말을 건넨다. 지인은 50대 중반에 글쓰기를 시작해 수필가로 등단하고 수필집도 내고 충북 여성문학상도 받고 이렇게 북콘서트까지 끊임없이 성장하였다. 그에 반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흉내만 내다 1년 전 기사를 쓰면서 겨우 글쓰기를 시작했고 수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인들은 하나둘 출판이라는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나만 제자리였다. 아니 어쩌면 길을 잃고 있었다.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지. 목표도 없었다. 그저 아무거나 구겨 넣어 만든 잡탕 요리처럼 보기도 맛도 별로였다. 그러고도 배울 생각 조차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서 무기력한 시간에 대충 적응하려고만 했다. 남들은 인생 오십부터라고 외쳤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은 다해봤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갔다고 생각했다. 나의 오십 대는 그렇게 스스로 고립이었다.  


그러다 이틀 전 수필가 지인의 연락이다. 몇 년만이다. 북콘서트 개최소식을 들고 나타났다. 소도시인 이곳에서 북콘서트가 가당키나 한지 걱정이지만 작은 도서관 관장과 의기투합해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는 전언이다. 관장님은 삶의 풍요를 위해 문학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셨다. 숲 속의 피톤치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글쓰기 라고 하셨다.   


관객의 대부분은 글쓰기에 관심 있는 문학인이고, 일부는 경로당에서 구경 나온 노인들이었다.      

육십 중후반이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모습으로 단상에 앉아 관객과의 대화에 차분히 답을 하신다. 끊임없이 쓰는 것과 계속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엔 모임을 결성했다고 한다. 서로 피드백을 받기 위한 글쓰기 모임. 지금의 자리까지 이유 있는 작가의 겸손한 모습이었다.      


사실, 나도 글쓰기 모임을 결성했다. 한 달 전. 처음부터 결성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나처럼 휴직 기를 가진 시내 곳곳 빈건물을 보면서 쓸쓸했다. 다시 채워지지 않으면 언젠가 폐허가 되어 사라질 빈건물을 보면 슬펐다. 마치 늙고 길 잃은 내 모습 같아서. 그렇게 적응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친 결과랄까.      


동지의 이름을 부르며 길 잃은 내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방향을 찾아 한 발자국 나아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동력이 필요했다. 계속 채우며 나아가기 위한 힘. 내 가슴을 뛰게 할 그것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렇게 지역소식지에 글쓰기 모임 공고를 올렸고 나를 포함 4명이 글쓰기 모임을 하게 되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란 진부함을 부여하며 각자의 목표는 확실해졌다.       


지금 우리는 내부수리 중인 공간처럼 한 문장 한 문장 가꾸고 있다. 쉬지 않고 작업하고 있음을 공유하고 독려한다. 리모델링한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작업한다. 삶의 본질은 가꾸는 데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고립되어 출입구를 찾지 못한다.    


방향치가 없는 나는 길을 자주 잃었다. 건물 안에서, 출입구를 찾지 못해 헤맬 때도, 해외에서 길을 잃어 등골이 오싹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온 걸 후회하지만 언제나 그때뿐 평생을 혼자 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해 평생 단독 행동을 많이 했는데 이제와 보면 그건 굉장한 오만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신경 쓰고 돕는 게 귀찮아 늘 혼자였지만, 정작 길을 잃고 헤맨 건 언제나 나였고 도움 준 건 언제나 ‘사람. 친구’였다.      

평생 길을 잃고 헤매다 멀고 먼 길을 돌아 이제 길을 찾은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평생 모임하나 없던 내가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알았다. 내가 얼마나 자만했던가를. 그 마음이 나를 성장시키지 못했음을. 성황리에 마친 지인의 북콘서트를 보며 글쓰기 모임의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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