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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Nov 15. 2020

취직이 되었다

삶은 아이러니. 세상도 아이러니.

베란다 창밖에 소나무가 있었는데 가지치기를 하자 시야가 트이고 전망이 깨끗해졌다.

가지치기 하나로 세상이 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푸른 소나무 잎이 늘 답답했었다.

푸른 소나무는 숲에 있어야 제격이다. 베란다 창 앞에는 부적격이다.      

깔끔해지고 싶어서. 달라 보이고 싶어서. 나도 머리를 잘랐다.  

늘 내가 잘랐는데 이번엔 어쩐지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었다. 목선이 보이는 단발이 예쁘죠.

하면서 미용사가 짧은 단발을 더 짧게 만들어 주었다. 대충 깎고 집에 와서 샴푸를 했다.     


취직을 했다.

일이 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는데 정작 기대했던 곳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기대했던 곳에 갈 때는 정장에 화장까지 외모에 신경을 썼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곳을 갈 때는 지칠 때로 지쳤고 지원자가 많아 면접 당일까지도 갈까 말까를 고민했던 곳이었다.  면접대기실에 모인 면접자들은 대부분 젊고 외모가 출중해서 괜히 왔나 싶었고,

면접이 끝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 내가 두 번다시 면접을 보러 오나 봐라 ” 하고 투덜 됐었다.


면접자가 많아 두 명씩 짝을 지어 봤는데 나랑 같이 면접을 본 젊은 친구는 인공지능 AI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막힘 없이 줄줄 답변을 잘했다.  영화에서 보는 바로 그 주인공의 면접 실사판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막힘이 없을까.


그 친구가 길게 답변하면 나는 그 친구의 1/5 정도의 짧은 답변을 했다. 어차피 포기한 면접이라 의욕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고, 그 친구는 역시나 막힘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시원하게 길게 답변했고, 나는 ,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 하고 끝마쳤다.     


정말 1 도 기대 안 했다.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다음날 합격 문자가 왔다.

놀라고 기뻐서 춤을 췄다. 홈피 게시판에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고 인공지능 같던 그 친구 이름은 없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왜 뽑혔는지를 모른다. 아이러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이 여기서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나의 업무 지식을 도움줄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들에겐 생소한 용어였지만 나에게는 20여 년을 알던 용어였다.


 행정을 하는 거대한 틀이 전문 지식 없이 이루어졌다는 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점이 보여 결국 기간 연장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여전히 불합리한 지침이었지만

어쨌거나 마무리된 것 같다.     


어찌 보면, 면접관이 나를 뽑은 것은 신의 한수 라고 자부 하고 싶다 기대도 안 해서 자소서도 이력서도 대충 써서 넣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성을 다하지 않은 서류에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아직 기간이 남아있고 여전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바쁘고 긴장됐던 시간은 지나갔다.

다음 주부터는 긴장과 바쁨은 덜할 것 같다.

일할때는 쉬고 싶고, 쉴때는 일하고 싶고,      


이 글은 브런치에 대한 예의로 쓴다.

한동안 글을  안 써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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