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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ul 04. 2020

나의 세계를 지나칠 때

              저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임도 없고 친구도 없다.  휴대폰은 서른이 넘어서 마련했고 카톡은 마흔이 넘어서 시작했다.

사회망을 넓히라는 이유로 휴대폰도 카톡도 시작했지만 그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휴대폰 저장 목록엔 스무 명이 채 안되며 카톡도 주고받는 이가 없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근한 적이 있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전화가 한통도 온 게 없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가는 데에 익숙하고 그렇게 살았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나와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말도 없고 묵묵히 잘 따라주던 친구, 그래서 편하게 지냈던 친구.  어느 날 친척 결혼식에 혼자 가기 심심해 그 친구를 데려가 같이 밥도 먹고 잘 헤어졌다. 그런데 그 친구가 뜬금없이 내게 쪽지로 비난을 해왔다.  남에 결혼식장에 데려가 밥 먹는 건 비난받을 일이라고 했다.  그 길로  그 친구를 멀리했다. 폰번호도 바꿨다. 그 친구가 표현했던 단어가 너무 싫어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그 말보다 그 마음이 싫었다.  내게 있어 인간관계란 그런 것이다.  상처 받고 혼자 끝내는 관계.   

   

그랬던 그 친구가 어떻게 알고 10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모르는 번호를 덥석 받았는데 그 친구였다. 내가 왜 연락을 끊었는지 알고 있었다.  밝은 목소리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왕래하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그 길에 다시 우정을 꽃피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오랜만에 전화해, 돈은 많이 벌었니 남자는 있니 무슨 재미로 사니 이런 질문이 벌써 불편하다.

나는, 영화를 이야기하고 음악을 이야기하고 맛집을 이야기하고 여행을 이야기하고 싶다.

서로가 이렇게 다른데 무의미하게 만나 친구가 있다는 허영심을 채우고 싶지 않다.

이제는 가식을 떨지 않아도 될 만큼 의식에서 자유롭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을 다시 만나는 건 위험 부담이 있다. 또다시 상처를 받고 헤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멀어진 마음만큼 그리움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다가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내 삶에 그런 식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것도 편하지는 않다.    



  

  나도 누군가에게 갑자기 거절당한 적이 있다. 영문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거절한 맥락과 똑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유를 묻지 않고 멀어짐을 받아들였다. 상처는 고스란히 예민한 나의 몫이었다. 상처를 주고받고 하는 사이에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불 필요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가 서로 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이 멀어지고, 나를 좋아하면 내가 멀어지고, 엇갈림 속에 이어진 관계가 일도 없다.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행복하게 혼자가 되었다.      


 심심할 땐 관계 맺기가 다른 온라인 카페 활동을 했다. 혼자 가는 여행. 솔로 전국 여행.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가 좋아 혼자인데 혼자인 사람들이 다시 모여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모순인가. 더구나 익명으로 모인 사람들 조차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 못해 상처를 주고받고. 오프라인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상사는 곳이었다. 사람 있는 곳엔 늘 문제가 함께 했다. 생긴 외모만큼 성격도 다 달랐다. 온라인도 믿어선 안된다.     

스무 명이 음료 주문을 하면 신기하게도 겹치는 음료가 하나도 없었다. 스무 명 모두가 각자 다른 음료를 주문했다. 그 사실에 서로가 서로를 놀라워했다.  그렇게 작은 것도 다름을  반복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별로 맘에 안 드는 사람이 남자를 소개해 준다 하길래, 저 남자 안 좋아해요,

대답해 놓고 보니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저 여자도 안 좋아해요, 그 대답도 이상했다.

결국,  저 원래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오해 마세요.라고 둘러댔다.  


모임도 친구도 없다. 모임도 친구도 있었으면 좋겠다.  

받아들이기엔 크고 포기하기엔 가까이 있는 이 현생을 살려면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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