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소의꿈 Jul 05. 2020

열정은 있으나 재능이 없는 당신

     그런 눈으론 글 쓰지 못해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 일종의 중독이다.  


예전에 시나리오에 빠진 적이 있다. 밤새워 탈고를 끝내고 공모전에 응시하지만 매번 탈락이었다.

이상하게도,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멘트가 뜨면 그때부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민망해서 다시 읽을 수도 없다. 항상 마감이 끝나면 불완전함이 깨어나는 어리석음.

그 짓을 반복했다. 마치 후회는 나의 운명처럼.   

단 한 번의 위안이 있다면, 경쟁이 세지 않은 곳에서 심사평을 들을 수 있는 본선까지 올랐다는 것인데, 한 줄 요약하면 캐릭터는 독창적으로 좋으나 주제의식이 없다는 총평으로 기억한다.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어 별짓을 다 해본 적이 있다. 당선된 적이 여러 번 있는 지인의 글을 표절할 생각도 해봤고, 할리우드에 있다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구입해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볼 생각까지 했으니 막장 드라마의 끝이 따로 없다.  열정이 넘치는데 좋아하는 만큼 알아주지 않으니 글쓰기는 내게 있어 짝사랑 같은 존재다.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 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문예반에 들어갔다. 싫어하는 것을 하나하나 제외시키고 남은 게 문예반이었다. 첫 특별활동시간 대여섯 명 모인 교실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의 인사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율학습만 시켰다. 한 시간 내내 말없이 교실 안을 오갔던 국어 선생님.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 후로도 특별활동 시간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무의미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얼마 후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다. 문예반 전체가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 가는 것이어서 의아했다. 영문도 모른 체 끌려가다가 궁금해서 여쭤봤다. 선생님 저 글 하나도 못쓰는데요.  그때 선생님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래? 그래도 할 수 없지  하면서 뙤약볕 속을 걸어가셨다. 남들 수업하는 시간에 아무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갔던 어린 소녀의 짝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안돼도 할 수 없지. 지금은 가자. 


열정과 재능이 반비례하는 것만큼 큰 비극도 없다.  


그때 선생님이 문예반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셨다면 내 글쓰기에 발전이 있었을까.

글쓰기에 미련을 못 버린 나는 독학으로 시나리오 한편을 완성해 교육원 특강에 간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신인이었지만 지금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여러 번 한 아주 유명한 감독이다.  자신만만하게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건네고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신 말씀은

  “그런 눈으론 글 못써요 그렇게 맑은 눈으론 절대 못써요 ”  


재능이 없다는 말씀이셨다. 그래 그래도 할 수 없지. 뙤약볕이라도 걸어가야지. 그 다짐으로 교육원에 등록을 했다. 정식으로 배우면 뭔가 다를 것 같아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은 중학교 때 문예반

선생님과 똑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혼자 쓰고 합평 그게 전부였다. 실질적인 이론 공부 없이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재능이 없으니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의 계시도 나의 열정은 감당 못했다. 왕복 여섯 시간을 오가며 쓰고 또 썼다.  망상 한 트럭쯤은 쓴 거 같다.  먼 거리에도 즐거웠던 건 같은 꿈을 가진 동기들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면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아.

꿈은 잠잘 때나 꾸는 거죠. 영화는 영화예요.     

늘 현실적으로 말했던 그 녀석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는 여전히 두근두근 나를 꿈꾸게 한다.  

재능이 없어 잠시 내려놓고 있는 시나리오의 꿈.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나리오의 세상.  

비록 재능 없이 열정만 가득한 꿈이지만, 꿈을 포기하기엔 내게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다. 그럼에도 잠시 멈춰있던 꿈을 깨운 동력은 묘하게도 브런치 작가통보였다.

누구에겐 별거 아닐 수 있겠지브런치는 한걸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큰 힘을 내게 주었다.


세상이 정하는 기준이 내 가치를 평가해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깊이가 없어도 강요하지 않는다. 글에도 숙성도가 있다면 차차 발효되겠지.   

    

덧, 자아 농도가 짙은 수필을 쓰는 건 시나리오보다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세계를 지나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