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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ul 07. 2020

냉풍기

 좋아요 에 속지말자

2년 전 무더위를 기억하고 있다.  밤에는 꼭꼭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혔다.

창문 열기로 바람세기를 조절하며 새벽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렇지 않아도 잠들기 힘든 밤을 더 힘들게 했다. 더위를 타지 않아 선풍기 조차 없던 나는 그해 처음으로 서큘레이터를 주문했다.

도착한걸 보니 예상과 달리 소형 탁상용이었다. 디자인이 예뻐 그냥 쓰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줄줄 흐르는 땀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시 서큘레이터 검색에 들어갔다. 이번엔 사이즈부터 확인했다. 강력한 모터를 자랑한다는 **서큘레이터가 보였다. 후기가 나쁘지 않았다. 가격이 고가였지만 가격을 믿고 따지고 볼 것도 없이 바로 주문을 했다.

도착한 서큘레이터는 디자인도 꽝 성능도 꽝 아주 볼품없는 조립품이었다.

더구나 회전도 되지 않아 소음만 엄청 큰 못난이 서큘레이터였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상시 같으면 손가락이 아프도록 서핑했을 텐데 더위에 가격만 믿고 덥석 주문한 내 실수였다.

다시 들어가 동일 제품 검색을 했더니 내가 산 가격의 절반으로 판매되는 곳도 있었다. 내가 호구였다.

후회가 막심했다. 시기를 놓쳐 반품도 못하고,  시골집에 보내 드렸다.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이미 샀으면  후회하는 거 아니라고  하셨다. 소용없는 일로 마음 쓰지 말란 뜻이다,




올해 그 무더위가 다시 온다는 뉴스를 접했다. 2년 전 무더위에 겁을 먹었던 터라 에어컨 준비를 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마침 홈쇼핑에서 에어컨 방송을 하고 있었다.

가격도 적당해 볼 것도 없이 번호를 눌렀다. 홈쇼핑 마감 시간이라 손이 바빴다. 두 번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는 멘트에 마음은 더 급했다. 마감 3분 알람이 떴다. 급해졌다. 몇 번 통화 끝에 가까스로 연결되고 주문도 잘했다. 에어컨 세상을 누리게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중요한 이 시점에  카드 비번 오류 횟수 5번이라 결제가 안된다고 했다.

상담원을 연결해 "저 비번 잘 못 누르지 않았어요".라고 했더니 이번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비번을 잘못 누른 게 누적으로 쌓여서 그렇다며 은행에 가서 다시 설정하라고 안내했다.

아무리 떼를 쓰고 졸라도 상담원은 결제해 주지 않았다. 홈쇼핑 사상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경우는 또 처음이다. 그렇게 에어컨을 보내고 주말을 보내고 하는 사이 에어컨에 대한 열망은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에어컨은 벽에 구멍을 뚫고 공사를 해야 한다는데 누군가 내 집에 와서 몇 시간을 그렇게 하는 게 싫었다. 나의 집에는 못 하나 박은 흔적이 없다. 멀쩡한 곳에 생채기를 내는 거 같아 그런 것들이 싫다.

너무 완벽한 것도 싫다. 에어컨과 여름은 너무 완벽한 조합이다. 여름엔 적당히 더위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여름이지. 손질 관리가 필요한 에어컨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선풍기라면 모를까.       


재작년 무더위를 생각하면 뭐라도 하나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에어컨 말고 대체품을 찾다 보니 냉풍기가 눈에 들어왔다. 시공도 필요 없고 얼음주머니만 넣으면 선풍기보다 시원하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친환경적이고 시원하다면 얼음주머니의 불편함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가격도 천차만별 브랜드도 천차만별 후기도 천차만별 이번엔 시간에 공을 들여 찬찬히 다 살폈다.

그중 모든 것이 적당한 브랜드 하나를 골랐다. 정가에 50% 세일을 하는 2020 신상품이었다.

일단 주문을 하고 다른 소셜 커머스를 들어가 봤다. 똑같은 상품인데 그곳에 올라온 후기는 작년 후기였다.

궁금증을 못 참고 담당자한테, "작년 상품인 거 같은데 신상이라고 광고하신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작년부터

나오는 상품이라고 했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가격 대비 후기도 좋아 그냥 넘어갔다.

빠른 배송으로 다음날 도착했는데 도착한 냉풍기는 내가 주문한 냉풍기가 아니었다.

나는 국산을 신청했는데 저머니가 왔다. 그 회사에서 수입 판매하는 상품인 듯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보냈을까. 외국산 저머니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일단 사용하면 반품이 안되기에 외형만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사이즈는 생각보다 작았다.

아담하다 못해 장난감 수준이었다. 내가 주문한 국산 냉풍기와 비슷한 사이즈였는데 실제로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구조는 간단했다. 바람 나오는 곳과 얼음 넣는 곳 단순한 구성이었다.

성능을 위해 사용해보고 싶었으나 반품을 생각 중이어서 구조만으로 바람의 세기를 추측했다. 다각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예행연습 끝에 반품을 결정했다. 반품 신청을 했더니 이유도 묻지 않고 수락해 주었다.

잘못 보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냉풍기에 몇 백개씩 달린 좋아요 후기를 신뢰하기 힘들어졌다. 알고 보니 좋아요 후기를 쓴 고객한테는 꽤 괜찮은 사은품을 주고 있었다.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후기를 믿어선 안될 거 같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속는다. 알면서 속고 모르면서 속고.

큰 기대를 했던 냉풍기를 보내자 간절함도 시들해지고 냉풍기에 대한 열정도 식었다.

올여름 무더위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던 계획은 원래 없었던 거처럼 제자리가 되었다.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에어컨도 냉풍기도 쉽게 포기가 되었다.  


무더위를 받아들이기로 맘먹었다.

다행히 무더위는 아직 오지 않았다. 7월의 바람이 베란다를 통해 시원하게 들어온다.

가끔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도 온다. 냉풍기를 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언제 또 냉풍기 안 산 걸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올여름 무더위를 맞이할 준비는 끝냈다.

2년 전 내 친구 작은 서큘레이터 선풍기. 이걸로 끝.   보기보다 강력한 그 친구로 충분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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