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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Dec 30. 2022

당신, 알림을 너무 좋아하지 마

외로워서 심심해서 알림을 다시 켰다

태곳적 엄마의 뱃속에서도 혼자 있었다.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면서 무섭고 낯설어 크게 울었다. 줄곧 울기만 했다. 엄마는 ‘ 너는 왜 울기만 하니? 이유라도 알자’ 내게 말했지만 나는 거리로 도망 다니며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런 엄마는 나를 답답해했고 나는 고학년이 돼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지금 나이를 먹었지만 남들 다하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 나는 때가 되면 모든 것들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나이를 먹고,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갖게 되는 것처럼 결혼도 저절로 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관계’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되는 것임을 늦게 알아 버렸다.     


오랜만에 친척들과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젊은 대학생 조카와 사촌들은 화제를 남자 친구로 옮겨 갔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초등생 남조카가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모 모쏠이잖아 ’ 순간, 얼음땡이 되었다.


  녀석은 뭘 안다고 귓속말로 내게 속삭인 걸까. 녀석도 모솔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귀여운 조카 입에서 나온 모솔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녕 지금까지 모솔이라면 부끄러운 걸까.   흠흠,   


한동안 나도 그랬던 거 같다. 어쩌다 혼자인걸 들키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남자 친구 없냐? 연애는 해봤냐?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한동안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가 이제는 ‘ 내가 질해서 헤어졌어 ’라는 뻔뻔한 거짓말로 응수한다.     


나이 들수록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위안 삼았지만 모솔보다 더 부끄럽게 느껴지는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화려한 싱글로 요란을 떨어야 하는데 ‘외롭다’고 말하는 순간 어쩐지 우울하고 슬퍼 보여 ‘외로움’은 없다고 포장하며 가장 했던 거 같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여기저기서 울리는 알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알림이라 봐야 대부분 쇼핑몰 광고, 은행이벤트 마트 세일이 전부다. ‘띠링 띠’ 하는 브런치 울림은 어떤 긴급 속보일까 하고 눈을 감았다가도 알림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최근 브런치 알림이 자주 올린다.


문득, 사람과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 알림에 시간을 멈칫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만의 진정한 고요를 느끼 보자 는 마음에 모든 알림 설정을 차단했다. 그간 변경하는 게 귀찮아 그냥 뒀는데 이젠 시간 들여 모든 알림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삶이 고요해졌다. 자꾸만 휴대폰을 힐끔거렸다. 뭔가 소리가 나야만 만지던 휴대폰을 만질 이유가 없었다. 햇살은 따듯하게 들어오는데 적막했다. 내가 숨 쉬는 소리만 크게 들릴 만큼 주위는 ‘무’의 상태였다.     


고요한 ‘무’의 적막을 뚫고 아파트 공동 스피커 폰으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잡상인이 관리소를 사칭해 초인종을 누르니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안내방송마저 반가운 시간이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다시 고요해졌다. 너무 고요해서 아득했다. 나의 움직임만 감지되었다. 혼자였지만 엄마 뱃속에 다시 갇혀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아, 이게 외로움이구나, 아닌 척했지만, 나도 무척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태곳적 아이처럼 소리 내진 못했지만 속으로 삼키며 울고 있었다. 어릴 때 울었던 것도 다 외로워서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짓말 같겠지만 너무 외로워서 다시 알림을 켰다.     

너무 외로워 사막에서 뒤로 걸었다는 어떤 시인의 시. 너무 외로워 뒷걸음질 한 남자의 이야기. 오스 텅스 블루의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내가 그랬다. 시끄럽고 신경 쓰여 꺼뒀던 알림 들을 다시 켰다. 정말 너무 외로워서 다시 알림을 켰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며 혼자라고 한다. 혼자라서 외로운 외로움도 노력해야 극복되는 것이며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모솔에서 해방을 꿈꿀지언정 적어도 외로움은 포장하지 말자. '톡' ‘띠리 링링 띠’ 하는 알림 소리를 들으며 바쁜 척 휴대폰을 보며 뉴스라도 확인하는 게 오히려 솔직하다.  


고독을 즐기는 척 외롭지 않은 척 위선보다는 뉴스, 쇼핑몰ㆍ브런치  알림이라도 켜놓는 게 인간적이라면 내가 너무 외로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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