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힙합 좋아해?
얼마 전 조카한테 받은 질문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도 받았다.
의도를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이 나이에 아직도 힙합 좋아한다고 하면 놀릴까 봐 주춤하고 있는데, 친구가 먼저 지난주 개 승자에 나온 송민호 얘기를 하며 힙합에 대해 물었다. ‘그래 내가 개다! 그래 내가 걔다!’ 하면서 등장한 와일드카드 송민호가 꽤나 멋있었다고 했다.
친구가 모처럼 힙합에 관심을 보이자 나는 흥분해서 꾀차고 있던 힙합과 래퍼를 줄줄이 꺼내 들었다. 힙합의 꽃은 디스라고 열변하며 마미손 팬임을 고백했다. 관심 영역이 나타나면 말이 많아지는 나의 주특기, 속사포 랩을 발사하며 힙합 찬양을 노래했다. 친구는 다시, 오래전 힙합을 모르던 때의 멍 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음악방송을 보며 힙합을 좋아했지만 나와 공감하며 얘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나를 이해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엠넷을 보고 있으면, 다가와 양해도 없이 볼륨을 낮추며 ‘ 아휴.. 시끄러워.. 언니는 언제까지 저런 걸 볼 거야, 어째 사람이 변하지를 않아 나이를 먹어도 ’ 하면서 나를 철없게 보던 동생이 있었고, 대부분 주부였던 친구들은 아이돌이나 힙합엔 아예 관심조차 없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어쩌다 쇼미 얘기를 하면 그냥 한참 동안 멍하니 듣고 있다가, 응, 한마디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친구가 힙합에 관심을 보이자 힙합동지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 만난 고기처럼 힙합 스토리를 풀었다.
나는 쇼미 시즌을 놓치지 않는 열혈 팬이었고, 연속으로 나온 언프리티 랩스타까지 즐겨 보았으니 나의 힙합 역사는 비교적 길다. 쇼미가 끝나면 기다렸던 언프리티 랩스 타는 어느 순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아무래도 여자 래퍼가 많지 않고 남자에 비해 인기가 덜해서 그런 듯했다. 최근, 인기 많은 헤이즈가 언프리티 랩스타 출신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 같다. 청순한 이미지의 헤이즈가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와 “ 아빠 돈 벌지 마! 엄마 돈 벌지 마! 오빠 돈 벌지 마!’ 하면서 돈은 헤이즈가 벌겠다며 부르짖던 래퍼로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말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가사가 꽤나 도발적이어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은 헤이즈였는데 지금은 래퍼보단 가수로서 돈을 더 벌고 있다. 지역행사에 왔을 때 헤이즈를 보려고, 혼자 집에 있던 조카가 빨리 오라는 연락을 했음에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헤이즈 때문에 밤 12시까지 기다렸던걸 보면 나도 꽤나 주책이었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어린 조카와 랩으로 디스전을 가끔 하는데 랩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게 허용된다. 서로를 향해 속에 있던 말들을 내뱉으며 속내를 확인한다. 디스 배틀전은 조카의 속을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이다. 유일하게 힙합으로 대동 단결할 수 있는 조카. 우리는 서로 쇼미 나가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데뷔 때부터 좋아했던 방탄. 방탄의 RM 이 뇌섹남 문제적 남자에 나와 높은 아이큐를 자랑하며 ‘상남자’ 방탄을 홍보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다. 난, 그때부터 RM을 아니 RM이 속한 방탄을 좋아했다. 어느 날 갑자기 RM 이 ‘야 인마 니 꿈은 뭐니? 니 꿈은 뭐니’ 라며 모니터 밖 나를 향해 소리칠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No More Dream’이라는 곡인데 가사가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아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아니 아들뻘 되는 RM이 그 당시 무기력해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가사말처럼 ‘단 하루를 살아도 너의 길을 가라고 뭐라도 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큰 울림이 있는 가르침은 어른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돌 래퍼의 생각은 거침없이 솔직했다. 살아있는 날것 그 자체였다. 그게 좋았다. 나를 숨 쉬게 하는 건 래퍼가 노래하는 힙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힙합에 빠져들게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눈치 보고 움츠리고 가면 쓰고 틀에 박힌 체 따라가며 속내를 감춰야만 하는 어른들 세상과는 결이 달랐다.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겸손보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허세 떠는 래퍼의 모습은 오히려 멋있기까지 했다. 남들은 속물처럼 보겠지만 래퍼의 세상에선 재력과 명품을 과시하는 돈 자랑이 최고의 권력이다. 요즘은 플렉스라고 한다. 돈 자랑! 플렉스가 흉이 아닌 부러움의 대상인 것이다. 남들과 다른 그들만의 자유 플렉스! 이 모든 것이 래퍼에게는 가능했고 그런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자유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래퍼가 되고 싶었다.
그런 래퍼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며 꼴값 떤다고 말했던 상사가 있었다. 헐렁한 옷에 주렁주렁 걸친 장식품, 그런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판단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래퍼에게도 자기만의 고유한 철학이 있다. 작가가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듯 래퍼는 자신의 외모와 랩을 통해 세상에 포효한다. 어떠한 형식이나 틀이 없다.
기준도 없다. 던져진 비트 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노래하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이 공감을 얻을 때 인기가 있고 탑이 된다. (음. 그러고 보니 사는 이야기 등급과 같다)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라포 즉 공감이다.
그동안 나는, 내 또래 기준 여러모로 공감의 기준점에서 많이 벗어난 내가, 다수의 공감을 받기는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위엔 힙합보단 트로트고, 대부분 자식 얘기, 시댁 얘기, 요리 얘기로 가득한 그들과 나는 동떨어져 있었고 당연히 공감대가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공감을 못 받더라도 나만의 취향을 고집하며 갇혀있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어쩌다 친구가 치맥 하자 하면, 응 난 술못마셔, 커피 마시자고 해도, 응 난 커피 안 좋아해. 그럼 다른 거라도 마셔 하면, 응 난 차를 원래 안 좋아해 하면서 번번이 거절했었다.
나의 힙합을 공감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지만 나 역시 그들을 전혀 공감해 주지 않고 있었다. 공감의 기준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저울에만 공감의 기준점을 맞춰놓고 있었다. 공감은 결코 기준을 정해놓고 형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공감해 주길 바라면서 나는 왜 타인에겐 공감하지 않으려 했던 걸까.
아직도 힙합 좋아해?
그 질문은, 이제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는 뜻으로 들렸다.
힙합의 역사를 플렉스 하듯 장시간 떠든 나를, 친구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나중에는 조금 미안했다. 너무 내주장만 한 거 같아서.
친구야, 나는 힙합뿐 아니라 트로트도 좋아하니, 다음 시즌엔 쇼미와 트로트 오디션 얘기도 같이 하자.
덧ㆍ재미 없었던 이번 쇼미보며
서랍속에서 꺼낸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