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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an 06. 2023

제 영화가 지옥이라고요 현실은 더지옥.

나는 왜 너에게 끌리는가

내친김에 k 이야기도 해보자. K는 영화감독. 유명하다.  

 

내가 K를 처음 만난 곳은 학원 특강 장소였다. K는 그 당시 세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었고

학생들을 위해 특강을 하였는데 나는 학생도 아니면서 무작정 그곳을 찾아갔다. 독학으로 쓴 시나리오 한편을 들고 용감하게 그 먼 곳으로 향했다. 내가 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푸른 꿈을 안고. 4시간 길을 떠났다.    

   

오후 2시, 교실 안은 이미 학생들로 꽉 차 복도까지 쏟아져 나온 상태였다. 내가 들어갈 틈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틈을 비집고 겨우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k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K는 우리 쪽을 한번 훑더니 교단을 내려와 의자에 앉아있는 학생들 쪽을 향해 걸었다.   

K는 K다운 발상을 했다.

  

‘ 강의를 꼭 교단에서 할 필요는 없죠.  제가 가운데로 갈게요. 이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겠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앉아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의자와 탁자를 밀어냈다. 그제야 복도에 서있던 학생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학생들은 가운에 서있는 K를 중심으로 둥그런 원을 그렸다.

그리고 의자가 아닌 자유롭게 탁자 위 아무 곳에나 걸터앉았다.   K가 그러라고 했다.    


K는 영화를 전공한 충무로파도 유학파도 아니다. 그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녔고 그가 아무리 세계 유명영화제에서 수상을 해도 충무로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 사실이 그를 외롭게 했을 것이다. 학벌이 없는 K는 자수성가한 감독이다. 40살 이전까지 영화를 본 적도 없을 만큼 불우했던 그는 프랑스에서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프랑스에 간 것도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마지막 선택지였다.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경찰들한테 죽도록 맞기만 했던 k가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생기자 달라진 대우에 그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K의 첫 영화 가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두 번째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그렇게 매년 다작하며 필모를 쌓아가던 K. 그가 만든 영화가 이슈가 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제 영화가 지옥이라고요 현실은 더 지옥이다’      

 

특강이 끝나고 k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사실 나는 K가 누군지 몰랐다. 그저 감독이라는 이유로 시나리오를 건넸다. K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가방 속에 잘 챙겨 넣었다.  

그리곤 “ 뒤풀이 안 가세요? ”라고 물었다. “ 아, 네 가야죠” 했지만 나는 뒤풀이 참석을 하지 않았다. k는 자신이 받은 강의료로 뒤풀이를 했다. 참석하고 싶었지만 집이 시골이라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그 당시 은행 창구 출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무님이 나를 불렀는데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네 감독님!”이라고 말했다.  다들 벙 떠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K에게 보낸 시나리오 피드백만 상상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엄마가 처음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밤낮 컴퓨터만 한다고.      


연락이 없던 K에게 거의 스토커 수준이었던 거 같다. 시간이 흘러 K를 두 번째 만난 곳은 테크노마트 건물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진 커피숖이었다. 그때는 이미 K가 유명해진 상태였다.

몇몇 국제 영화제를 수상했기에 조금만 관심 있으면 그의 행색을 누구라도 다 아는 시기였다.

나는 우습게도 “혹시 이러다 스캔들 나면 어떡하죠? ”라고 물었더니 씩 웃으면서

그러면 그러라죠 별 반응 없었다.  나는 내얼굴이 신문에 나오면 어쩌지  진지한 상상을 잠시했다.

    

그는 내게 점심을 먹었냐고 물었고 나는 먹지도 않았으면서 먹었다고 했다. 그러자 차 주문을 했다. 나는 녹차를 시켰다. 그는 내가 궁금해하는 것 대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론 절대 글 못써요”라고 했다. 눈빛이 너무 맑아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엔 글렀다고 했다. 사랑도 이별도 경험치가 중요한데 내게는 그런것들이 하나도 안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까 꼭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영화판이 남자보단 여자가 감독과 작가가 되기 쉬운 공간이지만 당신까지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능없음을 돌려서 하는거지만 한숨만 나왔다. 당신도 되고싶어 노력했음서.


k가 주로 말했고 나는 들었다. 녹차 물을 두 번이나 리필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나와 근처 산책을 했다.

산책하면서 그는 영화얘기 출연한 배우얘기를 했다.

 

헤어질 때 K는 친절하게도 나를 터미널까지 배웅했다. 그리곤 근처에서 팔던 값비싼 ‘키노’ 영화 잡지를 사서 내게 선물했다. 시골서 갓 상경한 촌스러운 시골 소녀(?)가 꽤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의아한 건  K 가 굳이 나를 만나줄 이유는 전혀 없었던 거 같은데 외로웠던 것일까.    

   

결혼을 했음에도, 수많은 여배우를 만났음에도 그는 외로워 보였다. 불우했던 과거가 찬란할 만큼 남들이 로망 하는 자리에 올랐음에도 그는 끝없이 배고픈 사람처럼 외로워 보였다.  

   

K는 그 후로도 다작을 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뉴스를 통해 K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말처럼 현실은 지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외로운 한 마리 짐승이 돼버린 K.

새 삶을 꿈꾸던 K는 타국에서 생을 끝냈다. 그는 자신에게 그런 날이 오리란 걸 상상이나 했을까.

불우한 과거를 지나 신분상승된 삶을 살았지만 결핍된 애정 끝없이 외로왔던 k.  화려한 명품을 걸치고 오성급 호텔을 들어가는 창녀처럼 공허했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K를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내게 K는 순박하며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순간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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