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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May 14. 2022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관계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대인관계가 좋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원만하게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같이 일 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긍정적일수록 좋다. 서로 다른 성향들이 만난 집단에서 나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일은 어찌 볼 때 정치적일 수 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내편이 있다는 건 노동 감정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단시간 근로자로 근무하면서 굳이 네 편 내 편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타인의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는 대부분 상대적이기 때문에 일은 단순해도 관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해서 자유롭게 일하되 서로의 선은 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율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이 생기면서 나는 동료들에게 미안해할 일이 생겼다. 점심 먹는 속도가 느려 한참 뒤에나 늦게 일에 참여하다 보니 일이 다 끝난 상태였다. 동료들은 상관없고 괜찮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으나 괜찮은 게 진짜 괜찮은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말과 뜻이 다를 수 있는 게 인간관계다.      

더구나 무릎 아픈 내가 승강기 없는 곳에서 일하는 데에는 한계가 빨리 왔다. 하루 한번 계단을 오르는 것과 두 번 오르는 것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한 달이 되어가자 통증이 누적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거 같았다. 게다가 손가락 통증까지 더해져 힘들어졌다. 일하는 시간은 겨우 1시간밖에 안되는데 관절 곳곳에 신호가 온다는 건 노화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병원에서도 뚜렷한 진단을 내리지 못해 그저 소염진통제만 처방할 뿐이었다.     

손가락 통증은 컴퓨터 장시간 사용으로 생긴 직업병이고 무릎은 나이에 비해 일찍 찾아왔는데 의사는 마른 내 체형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곤 무릎 부위가 약해 그렇다는 말만 했다. 그러므로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라 했다. 평지만 걸어야 하고 너무 많이 걸어도 안된다고 한다. 한의원과 병행 치료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결론은 무릎이 아프지 않도록 혹사시키지 않아야 한다.       

점심 먹는 속도와 무릎 통증이 겹치자 마음의 결심을 하고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다. ‘죄송하지만 계약기간 못 채우고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이유를 물었고 나는 부끄럽지만 무릎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하는 업무가 당장 사람 한 명 빠진다고 못 할 일도 아니지만, 원한다면 다음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 다니겠다고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알겠다고 했다.     

퇴근 무렵 선생님은 나를 제외한 동료들을 따로 불러내었다. 선생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휴게실로 돌아온 동료들은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내가 무릎 때문에 평지 밖에 못 걷는다는 사실에 다들 믿기지 않아 했다. 무릎 안 좋은 건 알았지만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동료들이 나를 배려해 계단을 덜 오르락하는 곳으로 배치해줬고 신경 써 줬음에도 내가 그만둔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많이 놀라워했다.        

동료들에겐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서둘러 전했는데, 우린 괜찮으니 나만 괜찮으면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두 번 계단을 올라야 하는 일을 배제시켜 주기로 했다. 선생님은 동료들의 협의와 분란이 없음을 확인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말했다. 몇 날 며칠 깊게 고민했던 퇴사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해결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동료들이 그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미안해하지도 말아요 했던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점심 먹는 속도에 미안함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렸다. 아울러 고층이 아닌 저층에서만 일할수 있게 되었고, 휴게실은 4층 도서관이 아니라 지하 예절실로 옮긴다고 했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날 동료들과 처음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경쟁하며 견제하고 정치하던 조직생활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동료들이 보여준 배려에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성향 다른 동료들이 개인적인 내 상황에 공감하며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마음이 울컥했다. 비록 이기적인 관계로 점철된 조직사회라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동안 영혼 없이 인사했던 건조한 ‘안녕하세요’는 봄날처럼 따듯한 온기로 두 손을 크게 흔드는 인사로 바뀌었다. ‘우리는 각각에 속한 사람들이 주는 영향에 대해 감사히 여길 필요가 있어요’라는 제이셰티의 말을 표현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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