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추억
수요일 저녁이면 챙겨보는 방송이 있습니다. 손길이 필요하신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연예인분들이 직접 농사일과 집수리, 그 외의 도움을 드리는 프로그램입니다. 매번 쉽지 않은 일들을 진심을 다해 해결해 드리는 장면들을 볼 때면, 아무 연고도 없는 제가 흐뭇해하며 고맙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시골에 홀로 계시는 노모가 생각나서일 겁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함께한 시골집 풍경과 꽤 닮아 있는 곳들을 보며 그 시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고향집 뒤편에는 거의 스러질 듯한 옛집이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방은 창고가 되었으며 여전히 가마솥이 걸려있는 부엌은 연중행사로 메주콩을 삶는다거나 하는 몇몇의 드문 일로만 사용되곤 하는데요. 오래되어 수리가 필요한 집이 무너질까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저이지만 어머니는 아랑곳없이 옛 집 부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십니다.
부엌에는 여기저기 곰팡이가 나고 금세 주저앉을 것 같은 나무찬장이 아직도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록 정리를 왜 안 하시는지 습관처럼 궁금했지만, 이유를 여쭤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깔끔함을 자랑하시는 분이신데요. 세월의 무게만큼 켜켜이 먼지가 쌓인 오래된 물건들이 찬장 안에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젊은 시절의 추억을 소홀하게나마 간직하고 싶으셨을지, 아니면 지난했던 시절을 돌아보고 싶지 않으셨을지 무심히 가늠해 봅니다.
계단 왼쪽으로는 반지하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창으로 해가 충분히 들어오는 곳이었지요. 여름에는 콩나물이 자라는 시루가 있었고, 겨울철에는 제가 좋아하는 고들빼기김치가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가끔 고들빼기김치가 생각날 때는 만들어 볼 용기는 못 내고 반찬가게로 향하곤 한답니다.
방과 부엌사이에는 어린 시절 제 키보다 좀 높은 위치에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부엌에서 건네주는 음식을 받을 때, 키가 덜 자란 저는 까치발을 들고 아슬아슬하게 받아야만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문을 열면 부뚜막 위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시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제는 어릴 적의 집도 지금의 집도 옛집이 되어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아졌습니다. 아쉽게도 어린 시절 옛집은 수리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많이 낡아 있지요.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옛집 풍경은 종종 물기를 잃어 바스락거리는 감성에 촉촉함을 채워주고는 기억 어딘가로 숨어버리곤 합니다, 그리고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틈틈이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풋풋한 감성을 간직할 수 있도록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시골집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