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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Oct 28. 2024

어떤 기다림

흐린 하늘 grigogl [사진툰캘리/도연]



실낱같은 햇살이라도 있다면

책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적당한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실오라기들의 움직임이다

비문증은 꽤 성가시다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실낱이었던 햇살이

눈이 시릴 만큼 커졌다

검은 선캡이 눈에 들어왔다

눈도 보호하고 기미걱정도 없앨 요량으로

선캡의 단단한 밴드가 머리를 옥죄이는 것도 잠시 잊기로 한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듯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는다


책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는다


금세 해가 구름에 숨어버렸다

늦가을 한기에 잔뜩 움츠린 몸은

마음이 허락하기 전

미련 한 톨 안 남기고 툴툴 털고 일어나 버린다


물러나는 오늘은,

너그럽게 내일을 보내줄 것이므로

마음도 순순히 따라나선다



[그럭저럭 시, 열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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