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주저앉는 것인가?
#1분세바시 #1분묵상 #발걸음의깊이만큼
그래… 그랬다.
꿈도 많았고,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달렸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달랐다.
빛을 바라보기 보다는 [행동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일에 귀 기울여야만 했다.
길을 수정해 주면 거부하고 끝까지 멈추지 않는 모습을 마냥 지켜 봐야만 했었다.
“진실함”이라는 건 애초부터 찾을 수 없는 모래사장의 바늘이었다.
“남들은 잘 버티는데 너는 왜 못 견디는데???”하는 말만 들릴 뿐 마음 속 깊은 이야기에는 귀 기울임없이 다들 귀찮아하며 곁을 떠났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나 봐”하며 떠나지만, 이내 또 그 자리다.
#상처받은영혼
뭐가 상처일까? 그 상처를 보듬기 위해 받아주고 품어주고 수용해지면 회복이 되어갔지민, 회복이 된 후의 행동은 너무나 변해 버린다.
#겸손 #간절함
가장 기대하기 힘든 단어가 되어 버린다.
감당하기 힘들어 떠 넘겼다가 결국 다시 활동적이고 회복이 되어지면 욕심으로 되돌아와 그 자리를 다시 꿰차려고 온갖 불협화음을 만들어 냄을 늘 경험한다.
내가 모자라기 때문이겠지… 하며 체념이 일상이었다.
이런 모습에 가족들도 지쳐 버린 것이리라…
순수함을 순수함으로 받아주지 않고 이익과 결부시켜 이용을 하려는 것일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외침은 공허하고, 나눔은 욕심이며, 베풂은 계산으로 현실 속에 나타나니 “벙어리 냉가슴”이어야 할까? 아니면… 또 배낭을 둘러맨 채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일까?
가슴 아픔 일이 생겨 하루 종일 목이 터져라 피가 날 정도로 부르짖으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만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가 헛되지 않을 줄 알고 고맙습니다]라고 울먹이는데… 곁에서는 탐욕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데 … 미칠 것 같아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또 주저앉는 것인가?
뭘 내려놓고 뭘 포기해야하는 것일까?
다윗이 정말 간절하게 살려달라 애원하며 했던 그 삼정으로 기도했는데…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나를 무너지게 했다.
이래서 합심하여… 합력하여…라는 말이 어려운 것이고… 응답이 더디며 지칠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내 삶의 울타리가 우선이기에… 울타리 밖의 부르짖음에는 내 이익이 관련되지 않는 이상 공유함은 없음을 보게 되었다.
무얼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지만…그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해 마음이 아파오는데… 알면서 고개를 돌리는 이들의 모습에…
난 여기서 또 뭘하고 있는가? 한다.
글 @namu.arttalk
그림 @cloe_easy_art 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