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발 자취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품을 사용한 기법
로베르트 캉팽[Santa Bárbara. CAMPIN, ROBERT. 산타 바바라. 1438. P0]
로베르트 캉팽의 그림은 실내장식을 표현하는 플랑드르 초기의 기술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된다.
바바라의 삶은 다음과 같다. 바바라는 니코메디아의 왕 디오스코루스의 딸이었다. 바바라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데다가 영특하기까지 한 자신의 딸을 다시없는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 딸이 좋지 못한 사람과 가까이함을 우려하여, 탑을 세우고 그 안에 딸을 감금하여 아무도 딸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녀에게 많은 구혼자가 몰려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더욱이 그녀는 아버지가 믿는 종교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공부하던 과정에서 아버지가 믿는 종교의 공허함을 깨닫게 되었고, 참된 진리를 알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되었다.
디오스코루스가 여행을 떠나 오랫동안 없는 사이 그리스도인과 사귀게 되어 그에게서 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독교야말로 참된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바바라는 아버지가 지은 탑 속에서 은둔자로 살기로 했다. 그녀는 건축가를 설득하여 삼위일체를 기념하여 탑에 세 개의 창문을 내도록 했다.
나중에 궁전으로 귀환한 니코메디아의 왕은 딸의 개종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그토록 사랑하던 딸을 마구 매질하였다. 그러고는 빈사 상태에 빠진 바바라를 결박해 끌고 법정에 나가 재판관에게 내주어 고소하였다.
재판관은 바바라를 타일러도 보고 위협하기도 하면서 바바라에게 종교를 배반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바바라는 한사코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이러한 바바라를 괘씸하게 여긴 재판관은 형 집행자들에게 고문 명령을 내려 갈퀴로 온몸을 찢게 하고 횃불로 양쪽 배를 태운 다음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날 밤, 예수 그리스도가 발현하여 바바라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해주었다. 다음날 다시 법정에 출두한 바바라의 상처가 치유된 기적을 목격하고 재판관은 아연실색하였으나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전날보다 더 심한 고문을 가하며 그녀에게 종교 배반을 강요했다.
그러나 역시 바바라는 자기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끝내 바바라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바바라의 아버지는 그 사형 현장에 직접 참석하여 재판관을 충동질할 뿐 아니라, 사형이 선고되자 스스로 형 집행자에게서 도끼를 빼앗아 딸의 사형 집행인이 되었다.
바바라는 참수되었고, 곧바로 그녀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아 온몸이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캉팽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은 그의 삶의 모습의 초기 장면이다.
저 멀리 그가 머물 성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지금 방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녀가 개종하는 삶의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르네상스의 템페라가 아닌 유채 기법으로 인해 세밀화, 사실화 기법의 실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꽃병과 꽃, 물병과 쟁반, 벽 위의 성상, 그리고 벽난로와 그 위의 기름병 타오르는 불빛 그리고 바바라의 옷감의 표현 등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을 뿐 아니라 확대를 해도 깨어지지 않는 세밀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소품들이 하나 하나의 의미들을 다 담고 있는데 이 부분은 차차 풀어나가기로 하자
더욱 놀라운 것은 저 멀리 지어지고 있는 성탑의 모양도 단순한 붓 터치가 아니라, 확대하면 세밀하게 그렸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언뜻 보면 단순한 붓 놀림 같아 보이지만 하나하나의 사물이 세밀하게 묘사됨으로 사물의 원근과 섬세함을 완벽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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