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과 웨일의 프란시스코 엔리케
로베르트 캉팽[San Juan Bautista y el maestro franciscano Enrique de Werl. CAMPIN, ROBERT. 세례 요한과 웨일의 프란시스코 엔리케 수도자. 1438. P0]
세계 최초의 유화라는 장르는 누가 시작을 했을까? 많은 곳을 읽다 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플랑드르의 화가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속에서 삶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르지오 바사리에 의해 얀 반 에이크가 언급됨으로 그때부터 얀 반 에이크가 유화의 장르를 연 사람으로 평가를 하고 있고, 또 어떤 책은 호두와 아마 씨 등을 이용한 기법을 만들어낸 것은 얀 반 에이크의 형 후베르트 반 에이크를 지목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사실상 플랑드르의 르네상스 포문을 열었던 로베르트 캉팽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다.
로베르트 캉팽은 화용 액과 휘발성 유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에 의하면 이 유화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고 중세 시대에도 있었던 유화물감은 그 근원을 찾아가는 논쟁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지금 그림 속에서는 세례 요한과 캉팽 당시의 수도자가 등장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이 떠오르는 장면은 무슨 이유일까?
플랑드르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사람이 바로 이 로베르트 캉팽으로 유채를 사용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며 섬세한 세밀화의 포문을 열어준 사람이다.
작은 방이라는 공간 속에 있지만, 특히 얀 반 에이크가 떠올랐던 이유는 저 한 가운데 거울이다.
저 거울을 확대해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 4명이 등장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세례 요한과 지팡이를 든 나이 든 사람과 그 뒤에 어린아이 한 명이 보인다.
4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른편에 있는 나무는 벽이 아니라, 문이다.
이 문 맨 아랫부분을 보면 바로 프란시스코 엔리케가 무릎 꿇고 있는 장면 속 옷자락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창가에 비치는 건물의 모습이다.
이 그림 전체 배경의 창문에는 아무것도 없이 저 멀리 원거리만 보인다.
하지만 이 작은 유리 속의 창문에는 건물이 2개가 보인다.
이렇게 거울에 투영된 모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을 표현하는 공간감이 화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서막을 열어준 화가 덕분에 그 뒤를 따라가는 화가들의 삶이 조금은 편리한 오솔길이 열린 듯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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