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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ro Mar 12. 2022

벨라스케스의 위대함의 서막 “브레다함락”

펠리페4세의 마음(관용)을 담아낸 걸작

 디에고 로드리게즈  실바  벨라스케스[Las lanzas o La rendición de Breda. VELÁZQUEZ, DIEGO RODRÍGUEZ DE SILVA Y. 창들 혹은 브레다 함락. 1635. P1 S00]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전쟁은 80년 전쟁으로 네덜란드가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해 벌인 전쟁을 그린 그림이다. 1590년 브레다는 네덜란드에 의해 점령되고 12년간 휴전을 유지한다. 하지만 1621년 스페인의 펠리페 4세가 왕위에 오르자 전쟁은 재개되었다.


    펠리페 4세는 많은 장수 중 특히 스피뇰라 장군을 선봉장으로 이 전쟁을 마감하기를 원했다. 스피뇰라 장군은 이 전쟁은 전면전이 아닌 보급로 차단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전쟁임을 깨닫고 브레다를 포위해서 결국 승전고를 울리게 된다. 1625년 6월 5일 브레다의 영주 나사우가 열쇠를 반납하며 펠리페 4세의 염원처럼 전쟁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서로의 굴욕감 없이 양쪽을 동시에 배려한 벨라스케스의 모습은 실로 놀랍다. 열쇠를 반납하는 나사우 장군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고 승전국의 장수인 스피뇰라 장군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모습은 질서정연한 창을 통해 승자의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창들로 인해 이 그림의 제목이 “창들”로 불리기도 한다. 반대편 네덜란드 진영은 창들이 질서가 없다. 패전국의 모습이다.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섬세함은 여기서 돋보인다. 펠리페 4세는 강압적인 승리보다는 승자의 자애로움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것을 벨라스케스는 두 마리의 말로 표현을 완성했다. 원래 말 머리는 승리를 상징한다. 말의 엉덩이는 패전을 뜻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어떠한가? 패전국에 말 머리를 그렸고, 승전국에 말의 엉덩이를 드러냈다.


    오랜 시간 이 그림을 연구했던 벨라스케스의 섬세함은 이렇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그런 역사적인 사건만을 목격하고 그냥 가버린다면, 어찌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위대한 그림이라 이해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앞에서 수르바란이 그린 “카디스 항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벨라스케스의 위대함을 비교하겠다고 했다.


    수르바란의 그림에서 장군들의 허리춤에 있는 띠들을 보면 섬세한 조각처럼 오밀조밀하게 그렸다. 마치 왕실의 왕이나 왕비 그리고 공주를 그릴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잠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가까이 가서 보자. 어떠한가? 스피뇰라 장군의 허리춤에 있는 띠는 몇 번의 넓은 붓으로 터치한 것 외에는 특징이 없다. 그리고 스피뇰라 장군 옆의 말꼬리도 마찬가지이다. 더 황당한 것은 자세히 보면, 스피뇰라 장군의 갑옷에 다른 색채감이 없다는 것이다. 전체가 검은색으로 칠했고, 어깨에 흰색으로 하이라이트 효과를 조금 낸 것과 옷에 전부 황금색으로 덩어리 형태로 그냥 찍어 놓은 것 외에는 없다. 이건 나사우 영주도 마찬가지이다. 고동색의 옷에 갈색 계열의 선 외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다.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옷과 모습을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스피뇰라 장군이 들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 보통 화가들이 입체감을 드러내기 위해 검은 흰색부터 시작해서 밝은 흰색을 사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이서 그림을 자세히 보려 해도 두꺼운 붓 터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이 그림을 우선 맨 뒤 수르바란의 그림이 있는 곳까지 와서 보자. 그러면 차이점이 생기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난 후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출입구 쪽에서 그림을 바라보자. 그러면 “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이 탄성이 나왔다면, 벨라스케스의 의도가 보인 것이다.


    단순한 붓 터치로 보이는 듯하나,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2D에서 3D로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장군의 옷도 어느덧 입체감 있게 하나둘 표현력이 드러나고 나사우 장군 역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밀려오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에 쥐고 있던 지휘봉은 가까이에서 볼 때 아무 느낌이 없던 한 땀의 붓 터치가 지휘봉이 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면 템페라와 같아 보이지만, 멀리 가면 갈수록 플랑드르의 세밀화처럼 그림이 보인다. 이런 과감한 붓 터치 속에서 섬세함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벨라스케스는 완성했다. 카메라 옵스쿠로 방식, 황금선 기법, 테네브리즘의 모든 기법을 숙달한 절대적 감각의 터치로 그림을 바라보는 이에게 그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린 화가가 벨라스케스이다.


    그런데 저 배경 어디서 본듯하지 않는가? 단순한 대기 원근법이 아닌 히에로니무스 보스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호아킴 파티니르의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에서 만난 그 장면의 배경과 하늘이다. 그리고 벨라스케스도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른편 말 머리 부분에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모자를 쓴 자가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그리고 재미난 것은 창의 숫자가 후에 펠리페 4세와 그 옆에 있던 올리바레스 공작의 주문 때문에 스페인 창의 숫자가 늘고 가지런해졌다는 풍문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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