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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가 꿈꾸던 자리

올리바레스 백작의 부귀영화와 그 이면

by jairo

디에고 로드리게즈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Gaspar de Guzmán, conde-duque de Olivares, a caballo. VELÁZQUEZ, DIEGO RODRÍGUEZ DE SILVA Y. 가스파르 데 구즈만, 올리바레스 백작, 공작의 기마상. 1636. P1 S00]

올리바레스는 펠리페 4세의 절친한 친구로 스페인의 평화와 개혁 그리고 국가 운명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재정적 바닥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특히 1640년에서 1644년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인해 군사적 우위권이 막을 내린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이미지가 영국으로 넘어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프랑스의 도움으로 까탈루니야 지역에서는 계속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스크 지역으로 불리는 산 세바스티안 지역 인근의 푸엔테라비아(Fuenterrabía) 전투에서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사실 올리바레스는 푸엔테라비아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기마상 저 왼편 앞에 연기를 통해 지금 올리바레스가 해야 할 일에 관한 생각을 건네고 있다. 하지만, 올리바레스는 자신의 화려함을 장식하고 싶어 하는 듯 허리춤의 보라색 벨벳에 이어진 황금 실은 빛에 의해 더욱 윤곽이 드러나며 화려함을 뽐낸다. 그리고 사실 왕 외에는 기마상을 그리지 않았었는데, 장군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왕보다 더 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은 흡사 펠리페 4세의 권력의 힘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결국, 벨라스케스가 1643년 1월 17일 올리바레스의 파면 후 스페인 왕실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된다. 화공의 신분으로 가장 낮은 모습에서 가장 높은 서열 3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이 기마상의 특징은 다른 기마상과 다른 점이다. 왼편과 오른편의 모습이 빛의 흐름에 따라 벨라스케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엘 그레코의 황금선 기법의 완성을 보여준다. 이 기법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이 바로 라스 메니나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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