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한 두 소년의 모습 속에 비추어지는 아기예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가 연상되는 건 나만 그런가?

by jairo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Los niños de la concha. MURILLO, BARTOLOMÉ ESTEBAN. 두 아이와 조가비. 1670. P1 S00]

무리요의 그림 중에 아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이 참 많다. 주사위 놀이를 하는 아이들 외에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해맑다. 할머니가 손주의 머리에서 이를 잡는 즐거운 그림도 많다. 이처럼 따스한 그림이 많은 이유가 뭘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무리요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 세비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가능했겠구나 싶다.


당시 스페인은 곡창지대로 다른 지역과 달리 풍성함이 가득했다. 과거 이슬람의 체제 속에서도 드넓은 시장의 의미를 지닌 것처럼 세비야는 풍성한 도시였다. 과거 타르테소스 민족이 인류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지역이었다. 이처럼 모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을 따지만, 세비야만큼 큰 이미지로 남는 지역은 스페인 어디에도 없다. 스페인이 기근으로 인해 다들 힘들어할 때 세비야는 곡창지대로서 20개의 센터를 만들어서 고아들을 교육하며 자라는데 세심한 배려를 했다. 덕분에 무리요도 9살에 고아가 되었음에도 이 기관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 받은 사랑으로 인해 자신도 결국 내리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지금, 이 그림 속에서도 이미 말한 것처럼 세례 요한과 예수의 특징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물을 제공하는 배려의 입장으로도 짐작이 되기는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미 알고 있듯이 십자가와 글이 있는 종이 매듭 그리고 가죽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특징이 보인다. 어린 예수는 옆의 양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상징하며 보여주고 있고, 천사들이 나타나 수종 들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부드러운 터치와 해맑은 미소는 좌우편 어두운 배경을 일순간 잠재우고 두 어린아이의 미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꾸미고 있다. 이처럼 무리요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마치 십자가의 예수를 설명할 때 하지만 왼편으로 치우치는 그림과 조각을 볼 때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무리요의 그림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바라볼 때 그 의미들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참, 조가비는 야고보 사도의 슨례길 상징이 되는데… 여러가지 의미 중 일단은 물을 먹는 컵의 기능이요. 또 다른 면은 세례자들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성경 인물들의 머리 부분을 보면 후광도 있지만 건축물에 조각 등으로 세워진 모습을 보면 조가비가 머리의 뒷 배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조가비는 스패인 전역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틸라로 향하는 나침반 역할이다. 그래서일까? 스페인 솔광장의 9개문과 조가비의 빗살무늬가 함께 떠오르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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