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학 후의 벨라스케스 작품을 보는 듯
에두아르도 로살레스 가이나스[Doña Isabel la Católica dictando su testamento. ROSALES GALLINAS, EDUARDO. 가톨릭 이세벨 여왕의 유언. 1864. P0 S00]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위대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실적 묘사법을 다시금 완벽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가까이서 바라보면 르네상스의 템페라 기법처럼 보이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플랑드르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사실적 묘사법을 제대로 표현한 사람이 없었는데, 19세기 로살레스가 가톨릭 이세벨 여왕의 유언을 그려내면서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등장하게 된다.
회화 계에 엄청난 파장과 아울러 스페인 회화 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남기게 된다. 지금 이 장면은 라 모타 성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이세벨 여왕과 그 주변 인물들이 품고 있는 생각들을 그려내고 있다. 등장인물은 카스티야 공화국과 나바라 공화국 레온 공화국 그리고 아라곤 공화국이 1468년 하나가 되게 된다. 바로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4개의 공화국이 하나의 나라 에스파냐가 되는데, 이 이름은 이세벨 여왕이 1492년 1월 2일 보압딜을 물리치고 난 후 사용하게 된다.
지금 이 세웠던 나라를 여전히 하나의 왕관 아래 두고자 유언을 하는 장면이다. 후손들은 공주들인데, 아쉽게도 지금 왼편에 서 있는 후아나의 남편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가 가보를 이으려고 하지만 그만 일찍 죽게 된다. 이때 후아나는 자신의 남편 펠리페 1세의 시신을 부르고스부터 이끌고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까지 8개월의 세월을 보내면서 끌고 내려간다. 이 부분은 프란시스코 프라디야 오르티즈의 그림 광녀 후아나 부분에서 설명하겠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광녀 후아나의 아들 카를로스 5세가 합스부르크와 스페인 왕조의 절대군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에스파냐는 지속해서 한 나라로 가게 된다.
이때 붉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남편 페르난도이다. 자신이 재위하고 있음에도 부르고뉴 왕국이기는 하지만 그곳의 왕이 펠리페 1세였다. 곧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 자체를 펠리페 1세가 물려받게 되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고비아 알카사르에 가보면 알듯이 “왕좌의 방” 의자 위에 [TANTO MONTA]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동등한 권위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백성과의 사이에 쓰면 좋은 말이지만, 왕이 사용할 때 어느 왕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늘 이세벨 여왕의 힘이 더 우위였기에 더는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짐작했을 것이다. 세비야에 가면 스페인 광장을 다들 들리게 되는데, 바르셀로나의 왕의 계단에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보고를 하는 장면 속에서 이세벨은 정 중앙에서 보고를 받지만, 자신의 왕궁에서 페르난도는 뭔가 어색하게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 들고 있다. 이처럼 항상 뒤처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한이 가득한 얼굴로 그려져 있다.
그 맞은편 다리 쪽에는 톨레도 대성당을 화려하게 꾸몄던 참사관회의실에 있는 저 얼굴 시스네로스 추기경이 있다. 여왕의 모든 말을 받아 문서화 하는 사람 뒤에 있는 추기경 외 왕실과 관련된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이세벨 여왕과 다른 의미들이 드러난다. 뭔가 계산했던 것과 어긋난 느낌이 밀려오는 그런 표정이랄까? 이러한 표정의 세밀화된 묘사를 위해 로살레스는 벨라스케스의 사실적 묘사법을 끌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빛이 이세벨 여왕의 침실로 고정됨으로 인해 주변의 모든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왕 주변의 붓 터치는 느슨하면서도 유연하게 덧칠됨을 보고 벨라스케스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 밀려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