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속의 사연들
5.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도메니코 비고디)[Domenico Ghirlandaio(Domenico Bigordi). Retrato de Giovanna Tornabuoni. 조반나 델리 알비지 토르부오니의 초상화. 1489~1490]
로렌조 드 메디치 시대에 활동했던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에게 영향력을 끼친 화가로도 유명하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화가들로는 산드로 보티첼리, 폴라이올라 형제, 베르로치오 등이 있었다. 기를란다요의 주된 특징은 종교적 이야기의 맥락에서 현대 생활과 현대 사람들의 초상화를 묘사함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의 이미지가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그로 인해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조르조 바사리는 자신의 글에서 “비고디”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기를란다요”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고디의 아버지는 금 세공인이었다. 그런데 비고디가 만든 화환(IL GHIRLANDAIO)을 처음으로 제작을 했다. 이것을 금속 화환에 접목을 하면서 비고디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기를란다요가 되었다. 초기 기를란다요는 지나가는 사람과 방문객들의 초상화를 그리던 사람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모자이크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 알레소 발도비네티의 제자가 되면서 점차로 피렌체에서는 안드레아 델 베르로치오의 영향을 받게 되고 이후 보티첼리와 움브리아의 화가 페루기노 등과 함께 르네상스 초기를 움직이던 주류화가로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기를란다요는 프레스코화에서 탁월한 능력을 돋보이며 주목받기 시작을 했다. 유명한 보티첼리의 “성 어거스틴”과 함께 할 작품으로 “성 헤로니모”를 그리기도 했다. 이후 교황 식스투스 4세에 의해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 예수의 제자들을 그리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이 그림은 로렌조 토르부오니와 결혼한 피렌체 귀족의 여성 조반나 델리 알비지(Giovanna degli Albizzi, o Giovanna Tornabuoni)를 묘사한 그림이다. 사실 이 여인은 이미 죽은 여인이었으나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비너스와 삼미신)의 많은 그림에 나타난다. 특히, 기를란다요는 토르부오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를 의뢰받고 그곳에 성모와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이 여인의 모습을 그림 속 얼굴로 등장을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프레스코화이면서 사실적인 디테일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 최고의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영향력이 후에 프란체스코 그라나치 그리고 시스티나 대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심판이 탄생하도록 길을 열어준 화가였다.
이 여인의 자세는 당시 피렌체 콰트로센토의 전형적인 기법 중의 하나이다. 젊은 여성의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해 중립적이고 어두운 붓 터치를 사용하였다. 몸의 절반만 나타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품위를 드러내기 위한 모습은 오히려 정면의 초상화보다 더 아름답다. 오랜 시간을 들였을 법한 단정한 머리에 앞 부분은 곱슬로 유지하면서 당시 부유층의 헤어스타일을 드러내주었고, 긴 목에 있는 목걸이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 등의 장식으로 이 여인이 어떤 삶을 누리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 준다. 그리고 전체적인 프레임의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의 모양이 직각이 되면서 중앙의 축이 되었고, 몸에 드러나는 부드러운 피라미드 구조로 한층 더 안정감을 더했다. 그리고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성경, 보석과 몇 권의 책(당시에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부와 지식을 상징한다. 결국 그림의 의뢰자는 자신의 아내가 살아있을 때의 모습인 이처럼 지적이고 부유함 속에 살아간 아름다움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인의 취미를 상징하는 다양한 장신구가 있다. 그리고 오른편 뒤에 있는 라틴어는 마르코 발레리오 마르시알(Marco Valerio Marcial )이라는 라틴어 시인의 싯귀절을 옮겨 놓은 것이다. ARS VTINAM MORES ANIMVMQUE EFFINGERE POSSES PVLCHRIOR IN TERRIS NVLLA TABELLA FORET MCCCCLXXXVIII(Arte, se tu potessi rappresentare il comportamento e l'animo, non ci sarebbe in terra tavola più bella. 1488)“예술이 인물의 외모와 그 내면을 재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아름다운 그림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488”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