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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ro May 06. 2022

한스 발둥 그린의 아담과 하와

뒤러의 친구이자 제자로서의 삶

14. 한스 발둥 그린[Hans Baldung Grien. Adán y Eva. 1531]

 

    알브레히트 뒤러의 제자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던 한스 발둥의 아담과 이브를 보고 있으면, 르네상스 초기 조토 디 본도네의 영향을 이어준 천재 화가가 마사초와 마솔리노의 산타 마리아 경당에서 보던 아담과 이브를 떠올리게 된다.


    이콘화가 만연하고 르네상스 초기에는 주로 아담과 이브는 뒤러가 그린 완벽한 신체의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어딘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마니에리슴을 보는 듯 하다. 플랑드르의 대표적 세밀화가인 로히에르 반 데르 웨이덴의 작품 속에서도 천사와 인간의 구분이 명확하다. 언뜻 보면,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 세상은 우리의 인체비율로 정확하게 표현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천상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표현하기 참으로 애매하다. 그럼에도 사람의 길이에서 차이가 보이며 천상과 지상의 확연한 구분을 이룬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다. 그래서 인류는 원죄라는 죄의 법칙에 따라 불안정하고 부정확하게 그려왔다. 그러다가 마사초와 마솔리노가 기둥에 그린 아담과 이브에서 비로서 완벽한 신체를 갖춘 남자와 여자가 등장을 한다. 지금 보고 있는 한스 발둥의 아담과 이브처럼 말이다. 물론, 이 그림은 마사초의 아담과 이브보다는 마솔리노의 아담과 이브랑 닮았다.  


    손에 선악과 열매를 들고 있는 이브의 옆에 뱀이 있고 그 옆에 아담이 이브를 안아주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점은, 이브가 아담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기대고 있다. 그리고 아담은 이런 이브를 안아 주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과연 이 상황에서 한스 발둥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성경에 보면, 선악과 열매를 먹으면 분명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사탄은 뱀을 동원해서 그 계략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 그림 어디에서도 불안함과 좌절 그리고 낙심이라는 장면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한 약속을 깨뜨리고도 “우리 이렇게 살아 있지 않니!”라고 말하는 듯한 이 표정들은 너무 황당하기 그지없다. 신의 말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일까? 아니면, 한스 발둥은 인간이 오늘의 상황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인간의 무모하고 어리석임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종교개혁에 많은 그림으로 지원을 했던 알브레히트 뒤러의 제자 한스 발둥 그린이었기에 그의 그림은 평범하게 도상학적으로 해석하며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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