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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ro del MUSEO DEL PRADO May 13. 2022

엘 그레코의 또다른 수태고지

그 섬세함응 보며



17.  그레코(도메티코스 테오토코 풀로스)[El Greco(Doménikos Theotokópoulos). La Anunciación. 수태고지. 1576]

 

    그리스 크레타 섬 출신의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는 크레타 섬에서 이콘화를 그리던 화가였다. 이탈리아로 유학을 오면서 베네치아에서는 티치아노에게 화려한 색채를 배웠고, 틴토레토에게서는 마니에리슴의 기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외에도 로마로 옮겨가면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라파엘로 등의 작품을 보며 자신의 역량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러던 중 로마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은 발가벗은 사람들이 등장하니 목욕탕 그림이네? 지우면 내가 다시 그려줄께”라며 당시 미술계를 흔들어 놓았던 화가이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유행으로 “엘 에스꼬리알” 등을 채우겠다는 말에 34살의 엘 그레코 역시 스페인으로 와 정착을 하며 생을 보낸다.


    당시 유럽의 미술은 플랑드르의 영향력으로 신성의 모습 역시도 고통과 인내라는 주제가 주류였다. 그런 와중에 엘 그레코의 천상의 세계는 우리와 다른 신비로운 곳이며, 화려하고 미켈란젤로나 알브레히트 뒤러의 완벽한 인체구조로 꾸몄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그레코의 방 중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자신이 흘리는 피를 닦고 있는 천사와 막달라 마리아를 내려다보는 그 눈빛은 유럽인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엘 그레코가 그려낸 신은 인내의 신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볼 때, 재미난 점 한 가지는 바로 이 수태고지를 보는 것이다. 크레타섬에서 그렸던 수태고지, 티치아노를 만나서 그린 수태고지, 틴토레토의 영향력이 묻어난 수태고지, 그리고 로마의 수태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 스페인에서의 수태고지는 그림 변화를 통해 당시 다양한 회화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많은 수태고지 중에 지금 보고 있는 이 수태고지는 바닥이 다른 것과 다름을 보게 된다. 보통 산이나 흙 위에 있는 성모를 그리는데, 지금 이 그림의 바닥은 격자무늬로 실내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저 격자 문양으로 인해 그림 전체의 구도와 틀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 바로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360도 회전하는 그림을 그린 틴토레토의 세족식에서 보던 바닥의 틀과 같다. 하지만 가장 많은 영향력은 역시 티치아노의 과감한 붓 터치와 그의 제자 베로네세의 붓 터치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난 것은 엘 그레코의 붓 터치가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를 이어 오면서 기존의 그림 방식과 좀 다른 변형을 이룬 것을 보게 된다. 바로 물감의 덩어리지는 현상이다. 초기의 수태고지는 평면에 그림으로 등장을 하지만, 중기 이후에 수태고지는 옷의 결을 강조하거나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등을 묘사할 때 붓 터치의 강함으로 인해 가까이에서 보면 두꺼운 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멀리 갈수록 그 두꺼움이 잔물결을 형성하면서 우리의 눈에 입체감을 더해준다. 이것이 바로 “황금선 기법”인데, 이후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을 하게 됨을 본다.


    바닥의 격자무늬 때문일까? 찾아온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은 더욱 완벽하게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보였고, 앉아서 천사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그 사람이냐? 는 반문을 던지는 듯 한 성모의 모습은 평면화된 이콘화에서 진보하여 공간감을 살리기 시작을 한다. 저 멀리 강력한 빛 속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나타난다. 다른 그림과 수태고지를 그린 그림들과는 달리 자세가 천사를 향한 자세로 반응의 모습보다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 속에서 읽고 있던 성경책과 그 속의 주인공이 자신이 됨에 대한 놀라움과 순수함이 얼굴을 확대해보면 자세하게 드러나 보인다. 어린 나이에 겪는 놀라움보다는 선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드러내고자 했던 이 시기의 엘 그레코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히 티치아노 시대에 베네치아의 무역 활성화로 인해 “라피스 라줄리”가 활성화되기는 했지만, 역시나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성모의 모습 속에 등장하는 청푸른 색과 달리 하늘의 배경색이 다른 이유도 한 몫을 한다. 플랑드르의 섬세하고 세밀함 속에 붓 터치를 찾을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이런 격렬한 움직임은 상당한 이슈가 되었고 회화계에서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놀라운 “반종교개혁 운동”을 통해 “실천의 믿음”을 강조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던 엘 그레코의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 활성화에 힘을 실었던 스페인 펠리페 2세에게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유일하게 매입한 그림 한 점이 바로 “세례 받는 예수”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마니에리슴에 빠져가는 엘 그레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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